'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질문이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개인적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럿을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을 사용하여 개념을 얻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더 이상 '누가'를 사용하려는 질문은 전혀 없다. 오히려 대답은 질문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있다. 질문 자체가 스스로 답한다. 171
나는 내 힘의 소유자이다. 그것도 내가 자신을 유일한 나로 알고 있을 때 그렇다다. 유일한 나 속에서 소유자 자신은 자신이 태어난 창조가 깃든 무로 되돌아간다. 172
그는 이 책을 인간답지 않은 인간에 대해 쓴 것이다. 175
볕뉘
1.
이렇게 전문 연구자와 번역자가 있는 줄 몰랐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도 번역이 되어 있다. 홀로 책읽기 가운데 슈트리너는 터럭 하나의 양주도 생각나게 하
지만, 청년 마르크스와 많이 겹치는 인물이다. 청년마르크스라는 영화도 그렇고 고병권의 자본론 읽기에도 나오는 아나키스트에 대한 과도한 반대와 관련되어 있다. 프루동 뿐만 아니라 그 인물 가운데 하나가 막스 슈트리너다. 슈트리너는 정작 보지 못하고 죽은 독일이데올로기는 이 인물에 비판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다.
2.
하지만 후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도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나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하나로 규정짓지는 않았다. 청춘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을 때, 공산당선언뿐만 아니라 독일이데올로기 역시 무언가 발언해야 하는 과도함이 많이 스며들어있다.
3.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아나키스트의 원류이기도 하다. 세 명의 비평가들 중의 포이에르 바흐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살필 듯이 커다란 사회주의 흐름의 역사는 아나키즘과 따로 분리할 수가 없다. 면면히 흘러오는 뒤섞이는 흐름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빠른 니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작도 나왔으니 세심히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