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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떠나는 여행
  • 카라바조 이야기
  • 김선현
  • 29,700원 (10%1,650)
  • 2024-11-08
  • : 1,350


미술심리치료 권위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보는 카라바조의 유년기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작품세계를 다룬다. 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 (1571-1610,이탈리아 밀라노)

카라바조를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카라바조 미술의 큰 특징인 명암법(테네브리즘)을 사용하여 강렬한 빛과 어둠의 극적 효과를 연출하는 기법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장면을 통한 접근으로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비유와 은유, 그리고 자신의 심경을 그림 속에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인데 짧은 그의 생을 따라가며 유년 시절부터 마지막 작품으로의 여정을 심리학적인
분석과 더불어 따라가는 여정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연민을 느끼게도 한다.




어린 시절 이탈리아의 흑사병 여파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까지 희생을 당하고 연이어 어머니와 동생을 떠나보낸 카라바조는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미술 공부를 하며 예술의 도시 로마에 입성하고 생계를 위한 정물화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로마에 온 초창기에 사귄 친구 마리오 민니티는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1593-95>,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1593-94>의 모델이다. 사회적으로 혼란하고 사기가 만연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포착한 카라바조의 작품에는 냉혹한 현실을 위트와 함께 담아냈다. 여러 화실을 전전하며 생활이 궁핍했을 카라바조의 생활은 로마의 뒷골목 문화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카라바조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며 강력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자를 만나는 행운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예술이 승승장구하는 일로에는 성당 제단화로 캔버스가 아닌 대형화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스케치 없이 캔버스에 곧바로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제단화는 큰 도전이자 모험이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입니다. "
평소 그의 작업 방식은 그의 작업에서 양날의 칼날로 작용하기도 했다.



제단화의 지나친 현실적 표현은 신성함의 부족으로 평가되며 그에게 첫 번째 좌절을 안기고 상실감을 갖게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작품으로 증명했던 카라바조. 여러 작품들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 자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 시점에 신성모독으로 해석되는 제단화는 그의 작업 여정에 걸림돌이 되어버린다.

신의 영원성과 대비되는 인간 삶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카라바조의 <명상하는 성 프란치스코, 1605-07>에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미술치료자이자 트라우마 전문가의 시선과 함께 세기의 거장 카라바조의 짧은 생애에 남은 작품들을 따라오는 여정의 마무리에 저자는 우리가 흔히 작가의 일생과 작품에 대한 평가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대해 이야기한다. 39년의 짧은 생에 1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카라바조는 도망자로 그의 마지막 행적이 여전히 묘연한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로 세기의 예술가로 부정할 수 없는 세기의 화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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