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볼 때면 작은 친구들은 작아서 귀엽고,
큰 친구들은 크니까 왕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사람보다 큰 강아지는 없고, 지구에는 균부터 고래까지 다양한 크기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작은 풀잎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때때로 거대한 건축물이나 자연풍경을 볼 때면 그 크기에 압도되곤 한다.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지를 비교하며 우열을 따지고 황금 비율이라는 것이 늘 등장하곤 한다.
과학계에서는 SI 단위계를 국제표준으로 하여 미터(m), 킬로그램(kg) 등 모든 것들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런 사이즈들에 대해서 별다른 의구심을 품지 않고 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데,
에너지, 환경, 식량, 인구, 경제, 역사, 공공 정책 등 50여 년간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를 선도해온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저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이 이러한 사이즈에 대해 거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는 도서를 집필했다.
책커버와 목차만 훑어봐도 흥미를 끄는 주제들이 많이 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줄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근데 좀 많은 분야에서 쏟아져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 바츨라프 스밀은 국제 문제 전문지인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선정 세계적 사상가 100인에 든 인물로서,
이 도서는 빌 게이츠, 건축가 노먼 포스터, <여섯 번째 대멸종>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 등의 추천을 받은 책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분야에서 50년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도서이기에, 한번에 소화시키기엔 다소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해 다소 우려를 하며 미리 경고를 하기도 하지만, 책 한 권 정도의 부피에 맞는 분량으로 적절히 조절했다고 한다.

목차는 총 9장으로 구성되는데 앞쪽에서는 크기의 역사, 황금비, 설계, 스케일링 등의 내용을 다루며 생각의 크기를 유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규분포 같은 통계적 지식으로 대칭과 비대칭에 대해 다룬 후, 마지막 9장에서 단어의 크기를 1000단어, 100단어, 10단어, 1단어로 스케일링하며 요약을 하여 마친다.

각 장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일부 발췌하며 감상을 남겨보도록 하겠다.
인구밀도가 높고 광역 교통망이 깔린 현대의 도시 위주 사회는 우리에게 기본적 편의와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 수십 가지 표준 치수를 정해놓고 있다. 공동주택은 방의 최소 높이를 준수해야 한다. 미국은 약 2.4미터로, 석고보드의 높이도 같은 규격이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1인당 최소 바닥 면적을 정해두었는데, 이는 풍요로운 국가들도 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가난한 나라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당시 프랑스의 공공 임대주택에 적용된 기준은 1922년과 1950년대 초에 똑같이 방 2개인 아파트가 최소 35제곱미터였으며, 반세기 뒤에야 45제곱미터로 늘었다. 일본은 1인당 최소 면적이 25제곱미터에 불과한 반면, 미국에서는 신축 단독주택의 1인당 평균 면적이 거의 70제곱미터에 달한다.
_p.19~20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내집마련을 위해 한 평생을 일한다 해도 다름없는 시대인데, 이러한 집이라는 공간 마저도 나라가 규정한 표준 치수에 따라 다른 크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가끔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쪽방들이 생각났는데, 이러한 규정을 좀 더 널널하게 둘 수는 없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생각보다 이런 사이즈가 생활편의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주변만 둘러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얼마전에 새로운 책상을 중고거래로 구했는데, 현관문의 가로세로 사이즈를 보며 문이 조금만 더 컸다면 수월하게 들여 놓을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그 일례다.
그리고 가끔씩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그 폭과 높이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졌을지 궁금했었는데, 가끔 발이 큰 사람이라던가 아직 키가 작은 어린이들을 볼 때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들이다.
혹은 버스좌석이 조금만 가로로 넓었다면 옆자리 사람과 불쾌한 접촉이 없었을 것 같다라는 생각 등 많은 일상 속의 크기들을 떠올렸다.
20세기 이후 주목할 만한 크기 기록이 경신된 사례가 너무나 많이 일어났고, 그 뒤에 나온 몇몇 분석 결과는 이런 증가가 어느 정도 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가장 큰 수력발전소의 용량은 1900년 것보다 600배 이상이다. 용광로(현대 문명의 가장 중요한 금속인 주철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구조물)의 부피는 5,000세제곱미터로 10배 증가했다. 철골 구조를 사용한 고층 건물의 높이는 828미터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까지 거의 정확히 9배 증가했다. 가장 큰 도시의 인구는 도쿄 대도시권의 3,700만 명까지 11배 증가했다. 세계 최대 경제는 미국의 것인데, 그 규모가 현재 약 32배 늘어났다.
_p.39~40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책과 인쇄물 등의 정보의 양, 새로운 제품과 설계, 기업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잉 사례는 결국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결론과 그 뒷받침으로 다양한 세계의 문제들을 언급한다.
이렇게 깔끔한 예시들과 구체적인 수치, 그리고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문제 분석까지 구성된 챕터를 읽으며 작가의 50년 경력에서 나오는 혜안이 느껴졌다.

... 앉아 있는 모습의 웨스트하일랜드 테리어인데, 50톤 넘는 흙에 심은 약 6만 포기의 꽃 무더기로 장식을 했다.
이 거대한 크기의 꽃 강아지는 왜 만든 걸까? 당연히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고, 너무 조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저도 모르게 반응을 일으킨다. 어긋난 예상과 과장된 현실이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주침은 크기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지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지속적이고 누적되는 경험을 통해 예상되는 크기를 잠재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런 예상된 표준을 크게 벗어나는 사물, 이미지 경험을 접할 때 '놀람'이라는 반응을 일으키며, 이러한 만남의 성격에 따라 환호에서 억누를 수 없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제프쿤스는 확신과 안정감을 주기 위해, 경외감과 기쁨을 주기 위해 이 거대한(12.4*12.4*8.2미터) 앉은 강아지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독자 여러분은 개 또는 거대한 강철 틀로 만든 꽃 강아지를 굳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작품이 감탄할 만하며 쿤스가 원래 계획했던 쪽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인정할 게 틀림없다. ...
_p.61~62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과장이나 왜곡,축소를 통해 명성을 얻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르네 마그리트의 '고정된 시간' 등이다.

가끔 여행을 다니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큼직한 조각상들을 보며 어떤 의도로 만들었을까 하고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끔씩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감상할 때면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여 익숙한 것들이어도 크기를 달리하거나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재배치 되어 있을 때 새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언급하며 사람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표준 시각적 크기'를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고 시각 장기 기억을 토대로 종이에 무언가를 그릴 때 실제 크기에 비례하게 그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매일 쳐다보고 있는 작은 스마트폰과 그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한 경각심으로 마무리 된다.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적어내리긴 힘들지만, 한 주제에 대해 많은 연구결과와 실제 사례들이 연관되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았고, 또 이런 다양한 시선을 통해 경직된 생각과 그 크기에 대한 제약을 던져버릴 수 있는 도서였다. 실제로 책을 읽기 전에 사이즈에 대해서 어떤 내용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미리 생각했던 주제들(스마트폰, 계단의 크기, 건물의 크기 등..) 이 책에서 실제 언급되고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점이 재밌었다. 따라서 미리 독서 전에 목차를 보며 미리 예상을 해보는 것도 이 책을 재밌게 읽는 방법일 것 같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