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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중반기 영화계를 강타한 영화를 꼽으라면 누구도 주저없이 <써니>를 꼽을 것이다. 120여일동안 무려 74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역대 한국영화 11위에 랭크되었다고 한다(클릭). 이 영화는 처음에 필자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 했다. 일단 장르가 드라마적인 것이었고, 여자들만 나오는지라 뭔가 잔잔한 이야기로만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풍산개>라든가, <모비딕> 같은 영화보다 빨리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계속 재밌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면서 한번 가 볼까? 하는 호기심에 가게 되었다. 결과는 대만족! 이미 <과속스캔들>을 대박(이건 무려 830만명 동원!) 낸 감독의 작품인만큼,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뭔가 친숙하고 잔잔한 내용이 아주 좋았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진덕여고의 춘화, 장미, 진희, 금옥, 복희, 수지는 소위 학교에서 말하는 '잘 나가는' 아이들이다. 그 학교에 전라도 벌교에서 한 학생(나미)이 전학을 오게 되고, 춘화를 비롯한 아이들은 곧 나미를 자신과 같은 그룹(?)으로 소속시킨다.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배틀 대표주자 진희,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 등. 그리고 수지와 나미는 초반에 마찰을 빚게 되지만, 나미가 경쟁그룹 ‘소녀시대’와의 맞짱대결에서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사투리 욕 신공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대활약을 펼치고, 점차 7명은 하나가 되어간다. 7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영화 제목)를 결성하고 학교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이미 결혼하여 번듯하게 돈 잘 버는 남편과 이쁜 딸을 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가 된 나미는 우연히 춘화를 만나게 되고, 춘화가 곧 죽을 병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래서 춘화를 위해 나미는 옛 멤버들을 다시 모은다는내용이다.

일단 이 영화는 여자들,아니 엄마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 같다. 뭐 필자가 여자도 아니고,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느낀 감상을 위주로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1. 칠공주

영화 속의 칠공주라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다. 소위 '흑장미파', '칠공주파'와 같이 과거에 학교 짱! 이라고 불리는 일진 그룹을 대표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표현에는 불량스럽고, 거친 의미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들과 다른 일탈을 꿈꾸고, 학창 시절 획일적인 삶(공부만 하는)을 거부한다는 그런 뭐 나름의 진취적인 의미도 담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게 봤을때 감독이 하필 멤버를 7명으로 선정한 것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복고풍과 아주 적절하게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남자들이 7명으로 구성되어 칠왕자라든가, 하는 식의 그룹을 형성하는 설정은 없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딱 여자를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2. 귀여운 복고

요즘 여성그룹 티아라의 <롤리폴리>라는 곡이 연일 인기인데, 이 영화 역시 복고라는 테마를 갖고와 크게 인기를 끈 것이 아닐까 싶다. 각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복장이라든가 말투라든가, 행동에 있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킬만한 것들이 가득가득이다. 어설프게 어른이 되고 싶어 화장을 한다든가, 커피숍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신다거나, 팝을 들으면서 멋을 낸다거나, 담배를 멋지게 피우는 남자를 동경한다거나, 좋아하는 남자를 짝사랑하고, 다시 그 짝사랑이 이뤄지지 않아 슬퍼한다거나...어린 시절 누구나 겪는 여자들의 아련한 향수를 복고라는 테마와 잘 버무려 표현해냈다. 이는 영화 <친구>와는 또 다른 스타일인데 더 상큼발랄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3. 여자들의 우정

이게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싶다. 우정. 영화 <친구>에서도 우정이라는 주제가 다뤄지긴 했다. 대신 그걸 다루기 위해 감독은 폭력과 조폭, 살인과 죽음이라는 소재들을 갖다 붙였다. 그에 비해 여기에서도 감독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갖다 붙였지만, 폭력은 다소 약화되어 표현되었고(짱끼리 욕으로 싸우는 장면이라든가, 시위 현장에서 싸우는 거라든가, 수지의 무서운 모습이라든가, 수지 얼굴에 상처가 나는 모습 등등), 연신 코믹과 신파, 드라마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적절한 여성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똑같이 1명의 친구가 죽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다. 어느새 사회적으로 크게 성장한 춘화는 나미에게는 써니의 짱 자리를 주고, 나머지 친구들에게는(나미보다 다 못 살고 있는) 어릴때 그들의 꿈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고 이 세상을 뜬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감독은 단순히 춘화라는 친구 한명이 잘 먹고 잘 살아서 나머지 친구들도 호강하게 된다~를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과 의리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극장에서 못 본 분들이 있다면, 나중에 DVD 등으로 꼭 봤으면 한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소소한 재미들(특히 어린 나미가 눈을 확 뒤집어까고 걸죽한 사투리 욕을 내뱉는 장면은 압도적!)은 물론이요, 전체적으로 무리없이 흘러가는 스토리 라인,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과 설정 덕택에 관객들은 이 영화에 쉽게 녹아들고, 쉽게 적응할 수 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덧글 1.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영화 3편에 대한 리뷰만 했지만 장르가 다 달라서 신기하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정말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덧글 2. 개인적으로 어린 수지 역을 맡은 민효린보다, 어린 춘화 역을 맡은 강소라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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