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한 삶을 넘어서서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이주헌, 쌤앤파커스, 2025.
어릴 적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죽기를. 이왕이면 ‘청춘’에. 단, 조건은 그냥 그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무엇으로든 무엇이 되었든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삶으로 ‘일찍’. 그때의 삶은 화려하기보다는 몹시도 질척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정녕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던가 싶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마냥 세상을 치켜뜨고 바라보던 그때의. 그때 훗날의 세상은 너무도 멀리만 보여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그렇기에 집착이나 애착도 쉬이 잡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살아온 세상을 생각하는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는 다른 꿈을 꾼다. 삶이 ‘명작’이고픈 마음은 그래도 늘 있었던 듯하지만 반항과 욕심을 걷어내고 ‘반추’하는 오늘의 나는 세상에서 한번은 어떡하든 쨍하게 해뜨는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부르짖는다. 늘 허겁지겁하고 푹푹 발이 빠지는 것과 같은 삶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고. 남은 길은 어떡하든 꽃길만 가득하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에는 ‘아름답지 않은 삶’의 기준은 무언가, 저자가 생각하는 관점은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 ‘아름답지 않은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림 속의 이야기일지,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삶인지도 궁금했는데 결국 작가의 생애는 그림과 완전히 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스물 다섯 명의 화가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들의 ‘내면’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어떨 때 ‘행복’하였는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어떠했는지, 그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미는 어떠한 ‘순수’로 귀결되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련해진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처럼 화가들의 삶에 드리워진 굴곡이 참 많다 싶다. 예술가에게는 마치 그것이 예술의 혼을 불사르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명작’에 대한 열망과 현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또한 다른 것이니까. 명작으로 그것이 등가되는 것은 아니니까.
사랑, 이별, 소외, 외로움, 괴로움, 가난, 질병, 죽음 등은 우리네 삶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우리가 겨우 눈을 뜨고 한숨을 쉬며 일터로 나아가 어떤 날은 영혼을 담아 어떤 날은 영혼을 가출하며 일을 하듯 이들 화가들도 삶의 과정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거기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담긴다.
여러 화가들 중에서 ‘강렬한 색채’로 각인된 앙리 마티스의 말이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하나의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면, 아니 예민한 감수성이 방법의 도움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롭겠나. 나는 완전히 흔들리겠지만, 생각해보면 평생을 살아오면서 안 그런 적이 없었지. 절망의 순간에 이어 행복한 계시의 순간이 찾아온다네. 그런 계시 덕분에 나는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이뤄내지.‘
스물 다섯 명의 ’화가‘들. 시작도 끝도 다르게 흘러가는 각자의 삶에서, 결국 어떠한 삶이었든 그들은 그들이 남긴 그림과 함께 기억된다. 화가의 생애를 조금 알게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고, 화가의 삶에 애도하게 되기도 한다. 화가들이 시대를 반영하여 그림을 그리고, 또한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그림의 소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그림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림에 대해 무지한 나는 ’필‘이 느껴지는 그림에 보다 집중하게 될 터이지만, 그림 속에 담겨진 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앞서 보다 꽃길만 가득한 아름다운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고 있긴 하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 ’절망의 순간을 넘어 찾아 온 행복한 계시의 순간‘은 정녕 꽃길이지 않을까 싶다.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 삶이 이다지도 질퍽질퍽하고 있지만 순수한 감수성으로 조금 휘청하다 ’이성을 넘어서‘ 확고하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