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모시빛 서재
  •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 12,420원 (10%690)
  • 2019-03-29
  • : 838

표백제의 용도를 알고 있다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2019.


  장담컨대, 표백제가 피 냄새를 감춰 준다는 사실은 다들 몰랐을 거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표백제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의 범인들이 그렇게(그보다 더한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혀 놀랍지 않다. 놀라(야 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동생 아율라의 살인했다는 전화(동생이라고?)에 당연한 듯 달려가 범죄현장을 은닉하는 코레드다. 코레드는 꽤 익숙한 듯 문제를 ‘꼼꼼하게’ 처리한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이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정답. 코레드가 한 것처럼 시체를 처리하고 현장을 치운다. 신고는? 시체를 처리했다는 것이 신고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닌가. 동생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코레드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율라의 범행 동기는 무언가. 아율라에게서 살해된 남자들은 모두 애인이다. ‘모두’라는 말에 범행 전력이 단 한번이 아니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코레드가 한 말을 인용하면 되겠다. 셋부터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거야!

  코레드의 시선에서 서술되는 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후다닥 살인을 하고 빠르게 그 시신을 처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생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흔들리는 지점이 온다. 살인현장을 치우는 코레드의 행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살인을 저지른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춤을 추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켜왔던 그 마음이.

  아율라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작은 몸집, 긴 속눈썹, 도톰한 입술을 가진 인형”이다. 코레드도 아율라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생과는 달리 코레드는 몸이 크고 아름답지 않다. 간호사 코레드가 마음을 준 직장 동료 의사 타데는 다른 이들과 달리 코레드에 친절하고 자상하다. 코레드는 타데에 대한 연모로 가득하지만 타데는 아율라에게 반하고 만다. 코레드는 동생에 대한 질투와 타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아율라는 남자친구, 그녀의 애인이 조금만 성가시게 해도 그렇게 해버리고 마니까. 사람들은 아율라가 착하고 천사같고 여리다고 생각한다. 


“걔가 예뻐서 그래요. 그게 다예요. 남자들은 다른 건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 애한텐 모든 게 무사통과죠. 말이 되냐고요, 내가 동생을 지지하지 않는다니,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니…타데가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건 동생이에요. 동생이 그렇게 말했겠죠. 그 모든 일을 함께 겪고도….”


  이제 소설은 아율라의 아름다움과 코레드의 아름답지 않음을 대비하며 둘의 연대가 깨어질 것을 암시한다. 아율라와 코레드는 타데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다. 코레드는 이성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타데가 다른 남자들처럼 아율라의 미모에 무력해지는 것을 보기 힘들다. 살인자인 아율라는 그에 대한 걱정도 고민도 없이 일상을 즐기는데 코레드는 죄책감과 불안에 떨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코레드에겐 버겁고 불편하며 아율라에 대한 반감이 증가한다. 자, 이제 코레드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

  작가를 천재적 능력이라 칭하며 '현 시점을 대변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칭송을 받고 있다는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에 대한 찬사가 소설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킨다. 매력적인 외모의 싸이코 연쇄살인마에게 그렇게 열광적일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아율라의 살인을 묵인하는 코레드의 행동에 어떤 반전이 있어야 한다. 납득할 만한 서사가.  

  아율라가 너무도 당당해서인지 코레드에게 외치게 된다. 너 왜 그랬니? 이제 그만해. 아율라의 살인을 부추긴 것은 너라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신을 처리해 줄 것이 아니라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늘 문제해결사로 달려가 주니 아율라가 계속 살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이렇게 코레드를 몰아붙이면 이또한 아율라의 외모에 넘어간 반응인 걸까. 하지만 소설이라는 한계로(즉 아율라의 외모를 볼 수 없기에) 눈이 아득해지는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어찌해도 현실이란 생각을 하면 용서가 될 리 없다. 더구나 아율라를 코레드를 고유정으로 대치시키면 이야기가 갖는 느낌은 달라진다. 고유정은 살인의 이유를 성폭력이라 주장했다. 다만 고유정은 살인도 범죄현장 처리도 완벽히 홀로 처리했다. 전화를 해서 현장을 치워줄 코레드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외모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코레드의 분노가 아율라에게로 향하면 소설은 강력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의 질투를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유정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살인의 이유와 같이 두 자매가 연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함께 겪은 폭력의 경험이라면 자매의 연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지켜온 두 자매의 연대는 타데로 인해 흔들리는 시점, 코레드의 연대는 지켜질까, 아닐까. 두 자매의 비밀을 아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코레드는 이제 아율라의 살인현장을 처리하는 것에서 직접 살인을 하게 될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