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글쟁이가 밥벌어 먹고 살기 힘든 이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이름 석자 휘날리며 꽤 많은 책을 출간한 작가다.(사실 이렇게 많은 책을 내놨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의 작품 중 몇은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반납기일까지 펼쳐보지도 못하고 팔운동만 시켰었다. 참 인연이 닿지를 못했었는데, 이번에 아주 좋은 기회를 통해서 그의 문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워낙 '역사'에 관해선 무지해서 아무리 커피 타는 얘기라 해도 구한말이 어쩌고, 아관파천이 어쩌고 하면 못알아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두시간도 걸리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웠다.
줄거리 설명따윈 집어치우자. 이런 책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야 재미있으니까. 사실 나도 '노서아 가비'라는 사람이 고종한테 커피 타주는 이야기라고만 알고서 책을 읽었다. 어떤 이의 리뷰를 봤더니 그렇게 설명을 해놨더라구;; 노서아 가비는 그냥 러시아 커피의 우리식 발음이고, 고종한테 커피를 타주는게 '주'가 아니라, 어떤 사기꾼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주인공 따냐의 캐릭터다. 사실, 주인공 따냐는 구한말 여성 이라고 보기 어려울 캐릭터인데, 그런 점이 되려 마음에 든다. 전통적이고 순종적이며 정숙하고 모든 것들이 남성 아래에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과 주관이 있으며 추진력까지 있더라. 마지막에 이반을 처치하는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반면에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건, 허세스러운 문체라고나 할까?! 전반적으로 책이 잘 읽히는 와중에 한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커피는...다'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은 얼마나 더 허세스럽던지 웃기기까지 했다. 한편, 해설은 그동안 봐온 많은 해설들 중 가장 알아먹기 쉽게 쓰여져 있었다. 그래서 원래 해설 같은건 잘 안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읽어봤더니 내가 읽은 감상과도 비슷했고, 한국소설에 대해 가진 감정들도 비슷했으며, 책 전체의 내용을 정리해 주기도 해서 상당히 신선했다. 그동안은 문학비평가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독자들이 못알아먹는 말만 쓰고 지들끼리 좋아하는 사람인들인줄만 알아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번 소설은 꽤 흥미로웠다. 커피가 주인공 따냐의 삶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었고, 주인공의 캐릭터도 좋고, 이야기로써의 재미도 충분했다. 그 약간의 허세만 없었더라면 훨씬 담백하고 깔끔했을텐데... 그나저나 계속 커피얘기하니까 나도 오랜만에 향기 좋은 커피집에 가서 커피한잔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