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리 위 맑은 눈빛 가을 물을 닮았고
옥주는 비껴 나는 기러기 떼 같아라.
애간장 끊어지는 대목 탈 때 되어선
봄 산 같은 눈썹을 낮게 숙이는구나. (장선 ‘보살만’ 中) -26쪽
더없이 시름겨워
옛 추억 두 번 세 번 곱씹어보네.
방 안 깊은 곳에서
몇 번이고 술과 노래 즐기고 나면
원앙 이불 향기롭고 따뜻했었네.
어찌 잠시 떨어져 따로 지내며
공연히 애 태우는 일 있었으랴.
도타운 운우지정
천 번 만 번 맺으며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네. (유영 ‘낭도사만’ 中) -66-67쪽
삶과 죽음 갈리어 아득히 지낸 십 년
생각 아니 하려 해도
잊을 수가 없구려.
외로운 그 무덤은 천 리 너머라
슬픔을 털어놓을 길이 없는데
혹여 마주친대도 못 알아볼 듯하오.
얼굴은 풍진으로 가득한데다
머리는 서리처럼 희어졌으니. (소식 ‘강성자’ 中) -126쪽
해마다
제비 같은 신세로구나.
사막 두루 헤매다가
서까래로 와 깃든다.
이 한 몸 밖의 것은 생각지 말고
오래도록 술자리에 있을지어다.
강남에서 초라하게 지쳐버린 나그네라
흥겨운 음악소린 차마 듣지 못할지니,
노래 울려 퍼지는 자리 한 편에
베개와 대자리를 먼저 펴 두리
내 흠뻑 취해 바로 잘 수 있도록. (주방언 ‘만정방’ 中) -184-185쪽
정강년의 국치를
아직 설욕 못했나니
이 신하의 통한은
언제쯤 그치리오.
큰 수레를 몰고 가 깨부수리라
하란산 낮은 곳에 쳐진 요새를.
큰 뜻 세워 오랑캐 살 배불리 먹고
담소하며 흉노의 피 달게 마시리.
옛 산하를 남김없이 되찾은 후에
천자의 궁궐 향해 큰절 올리리. (악비 ‘만강홍’ 中) -273-274쪽
해 기울어 가는데
한껏 멀리 내다봐도 높은 성은 뵈지 않고
그저 마구 솟아오른 뭇 산만 보이누나.
위고가 떠난 뒤로
옥가락지 주며 맺은 약속 어찌 잊었으리.
하루 빨리 돌아감이 제일이리라
붉은 꽃 즐길 이가 없을 듯하니.
잘 드는 병주 가위 있다고 한들
이별 시름 천 가닥 못 잘라내리. (강기 ‘장정원만’ 中) -342쪽
고운 정 가득 담긴 그녀 눈빛에
난 그만 상사의 정 깊이 품은 터
봄 깊은 날 술자리 벌일 수밖에.
그녀야 또 어찌 알리
시구를 읊으려다 이 몸 축나서
입던 옷을 다시금 줄여야 한다는 걸. (오문영 ‘서학선’ 中) -432쪽
푸른 빛깔 둥근 연잎 제 홀로 말갛구나,
널따란 물가 한편 야트막한 모래톱에
우뚝하니 선 자태 맑고 아름답도다.
비녀인양 도르르 말려 난 새 잎
가을날의 수심을 아니 펼친다.
무더위는 얼마나 말아 품고 있으려나.
연잎을 지붕 삼은 쌍원앙이 나눈 밀어
빨래하는 여인에겐 말해주지 말게나.
원망 어린 노래 탓에 꽃바람이 그치면
천 겹 푸른 구름 닮은 연잎 다 시들 테니. (장염 ‘소영’ 中) -4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