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예빛책방
  • [전자책]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웬디 워커
  • 10,360원 (510)
  • 2017-08-16
  • : 257
사랑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어휘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우리 몸 안에서도 다르게 느낀다. 사랑은 누군가를 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웃게 한다. 누군가를 화나게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슬프게도 한다. 누군가를 흥분시키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나른한 만족감에 잠들게도 한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발달한 아이들이라도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성인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나쁜 결정을 내리는 까닭은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단이 아직 없을 뿐이다.

그 누구도, 우리 중 그 누구도 한 사람에게 온전한 자아를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 자체 혹은 상대에게 느끼는 우리 감정을 보고 사랑을 한다. 보통 단점은 참고 넘기며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생각만 하고 말 때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들여다봤을 때 내가 바라는 내 모습, 반드시 봐야 기분이 좋아지는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면 사랑의 허리뼈는 뚝 부러져버린다.

상을 주겠다는 약속만큼 손님을 쉽게 끄는 장사가 또 있을까. 상장이나 표창은 다 광고물이고, 그런 걸 대놓고 진열하는 의사들은 인간 광고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다 다르다. 따라서 치료 과정도 다 달라야 한다. 나는 특정 치료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효과’란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돕는 것.

환자들은 나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내 배에 주먹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경험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채워 넣는다.

우리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다.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오직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우리의 자리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목표와 긍지와 자아 관념을 심어준다. 우리는 부모에게 조건도 논리도 없는, 이성을 뛰어넘은 사랑을 바란다. 부모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런 사랑으로 왜곡돼 있길 바라며, 우리가 걷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오른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말해주길 기대한다. 물론 언젠가 우리의 점토 기린이 대단한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 구석에서 그 기린을 꺼냈을 때 우리는 부모가 이 못생긴 점토 덩어리를 보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워하고 뼈가 으스러져라 꼭 껴안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깨우쳐주는 것보다 훨씬. 우리의 평범함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기시켜줄 사람은 평생 차고 넘칠 데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죄책감을 떠넘기고 비난하고 싶을 때, 또는 죄과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경우 최대한 상대를 나쁘게 보고 최악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세상에 모호하지 않은 사랑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디자인이 돼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꺼이 죽을 의지가 있는 것은 자식이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란 것을 뼛속 깊이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대신 죽어줄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자식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혼자이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어쩌면 이성이나 양심 혹은 공포보다도 강할 것이다.

이제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거짓말이란 세균으로 감염시키려는 참이었다. 순수한 진실을 그대로 돌려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대신 내 사악한 계획에 따라 이기적인 목적으로 진실을 타락시킬 작정이었다. 내 아들을,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별거 아니니까 이것만 빼고 나머지는 그대로, 나머지는 제대로 찾아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하나의 타락이 진실의 종말이 될 수도 있는데. 한번 감염되면 건강한 살점이 다 죽어 없어질 때까지 세균이 파먹는다. 진실은 죽어버린다. 절망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보란 듯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 아이러니.

우리는 동물과 그리 멀지 않다. 우리를 구분해주는 것은 아주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후회를 통제하기 위해, 후회로부터 행복을 빼앗기지 않으려 날마다 사투를 벌인다. 가끔은 그냥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일하고,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뼈저리게. 숙달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후회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잠이 들면 후회가 다시 왕좌로 복귀한다. 아침이 오고 눈을 뜨면 다시 이 무자비한 독재자의 노예가 돼 있다.

두려움은 사라졌다. 선반 위 상자는 텅 비었다. 어둠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얼룩을 씻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창조한 저 결함 많지만 멋진 생명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늘 속에서 더럽게 살아가도 좋다고 체념했다.

어떤 감정이든 무조건 다 계속 느껴야만 했다. 이게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알겠는가? 감정들이 하나의 기억을 찾아 유착됐다. 이제 우리는 그 감정들의 안내를 받아 다른 감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 감정들을 따라 기억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다. 그저 이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3년을 사귀었는데, 사랑한다고 그렇게 수없이 고백하고 다정하게 사랑을 나눈 순간들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동안 내내 애정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단 말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헤어지더라도 그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못 믿겠어요. 어떤 감정도, 어떤 고백도, 어떤 사랑도 말이에요. 전부 다 헛소리예요. 그냥 호르몬이고, 욕망이고, 욕구고, 영혼에 난 구멍을 때우는 것에 불과하다고요. 우리는 전부 서로 이용만 하고 있어요, 안 그래요? 겉과 속이 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요.

사람들은 서로 이용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이상이 되기도 해요. 유약한 사랑, 욕망으로 치닫는 사랑, 구멍을 때우기 위한 임시변통의 행위들이 그 이상으로 변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 순간적 유대감, 건물 모퉁이를 지나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처럼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덮치는 이런 감정들이 머물러 더 항구적인 유대를 지탱하는 닻이 되기도 하고요. 대체로 사람들은 이런 걸 안정된 관계라고 하죠. 중요한 건 유대고, 유대감을 향한 욕구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다 그렇듯 거기서부터 시작해 친절과 배려로, 사랑의 행위로 소중히 가꿔나가는 거예요.

공감 능력은 우리 인간성의 핵심이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삶은 고통이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웬디 워커, 김선형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293000054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