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책 #하리뷰 #단편소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네 편의 가을 소설
#빛이스미는사이
#사각사각
#계절소설
#시절출판사
사각사각 시리즈는 3년전 전주북페어, 책쾌에서 처음 만났다. 시절출판사 부스에서 봄 소설<송이 송이 따다 드리리>를 구매하고 얼마 후에 가을을, 그러다 겨울을 구매했던 것 같다.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나는 요즘, 가을소설을 읽어본다.
모든 게 선명하고 반짝이며 빛나던 여름을 지나 가을이 훌쩍 다가왔다. 무더웠던 여름빛 아래에서 산책하던 시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하늘을 마주하며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져오는 건 가을이라 그런거라고. 그리움의 계절, 가을이다.
#김현
소 설 | 우리가 기계와 처음 섹스한 것은
에세이 | 가을을 위한 소네트
제목이 강렬한 이 단편!
미래에는 기계와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성별과 인종, 환경 모든 배경이 사라지려나. 그럼에도 역시 인간의 마음은 딱딱해지지 않을 것이고 변함없이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어려워하겠지.
P. 19 동원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자신 안의 결락이 오랜 연애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한땐 찬란했고 한땐 어두웠으며 결국 어느 한때의 추억 때문에 이어가고 있는 연애가 이미 끊어진 선이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서로의 유령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자 다시 울음이 터졌다.
P.22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타인을 내 안으로 들이는 법이리라.
#김종완
소 설 | 맑은 밤
에세이 | 달리기
첫문장이 잔잔하니 좋았다.
“맑은 밤이다. 까만 하늘에 구름도 없이, 덩그러니 달만 떠 있다.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37)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니 달리기에도 좋은 계절인 것 같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몸을 움직여야만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달리는 일, 걷는 일, 대청소와 같은 일. 지나간 기억들을 뒤로 흘려보내며.
P. 49~50 “그래서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달리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래서.”
“맞아. 달리면……. 저도 몸 생각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마음이 시끄러워서 달리는 것 같아요.”
소윤이 말했다.
“마음이 시끄러워서.”
“그냥 가끔씩 그래요. 자책하는 말들.”
#이종산
소 설 | 가을 소풍
에세이 | 가을 편지
소풍하면 가을이지. 가을은 쓸쓸하면서도 평온해지는 요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조용히 혼자서 산책하는 시간. 계절이 흐르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 가을이니까.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가을을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겠다.
P. 75 참 좋구나.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바깥세상과 숲이 아예 다른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숲 바깥세상에서 내가 무엇이었는지 아득해질 정도였다.
P.84 가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이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계절이 강처럼 사람들을 풍덩 빠트려 놓고 흘러간다. 가을이 또 한 바퀴 흐르고 있다.
#송재은
소 설 | 우연의 용기
에세이 | 우연을 이끌기
육아휴직으로 권고사직 당한 우연. 우연은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느낄 수 있는 기쁨 또한 컸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또다른 성취가 필요했던 우연은 블로그를 시작하며 육아 블로그에서 최고등급 배지를 받고 많은 협찬과 체험단 제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현희는 아이없는 기혼자였다. 현희와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발생하는데 인간이 가진 결핍이나 작은 질투였으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임신, 출산, 육아, 육아휴직, 기혼자인 여성의 고민과 현실을 잘 그려냈다. 가을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뒷에 실린 에세이를 읽어보니 소설 속 비 내리는 시기가 가을장마라고 한다.
P. 107 둘째가 생겼다는 걸 알고 나서 우연은 얼마간은 안도했고, 얼마간은 막막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이 상태에 더 머물 이유를 찾고 싶었는데,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 길을 막아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원은 당장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곤 했지만, 우연은 아이를 키우는 일 말고, 자신만의 뭔가를 계속 키워나가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다른 성취가 필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