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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 부는 찬 바람에

유튜브에 끌리던 시선, 문득 돌리니

환기위해 아내가 젖힌 묽은 창(窓) 너머

소리 없이 내리는 첫눈

아, 겨울이구나.


훗날, 21세기 시민의 부질없는 디지털 삶과 덜떨어진 사고, 엉성한 감수성을 연구하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공개하는 나의 유치찬란한 모던 시(詩) <첫눈>의 전문ㅡ 푸하ㅎㅎ


*




대니얼 데닛은 <직관펌프-생각을 열다>에서 지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논하며, 77가지의 생각도구라는 걸 소개한다. 그 가운데 1부 1장을 차지한 맨 처음의 것은 놀랍게도 “실수하기”이다. 나는 제목만 보고도 심퉁! 한다.



(‘심퉁’은 '심쿵'을 잘못 쓴 것인데, 오타 고치기 귀찮아 그냥 내비 둔 조어로, 지금 생각해보니 ‘심쿵하다’와는 매우 다른 뜻을 지녔다. 심쿵은 멋진 이성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아래로 떨어진다는 매우 낭만적인 비유다. 반면, 심퉁은 심장이 화살에 맞은 듯 퉁, 하고 튕긴다는 매우 절망적인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실수투성이의 무수한 흑역사로 점철된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두렵고 찔리는 심정을 말한다.)



어쨌든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1부 1장에서

첫 번째 도구의 중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정말 뜻밖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사의 상당 부분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아주 솔깃한 실수를 저지른 역사이며 그 역사를 모르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우리가 실수를 감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실수를 저질러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좋은 실수를 많이 할수록 우리가 그만큼 성장한다는 뜻이다. 그는 좋은 실수를 저지르기 위한 핵심 수법도 공개한다. 그것은 실수를 (특히, 스스로에게서) 감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수를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자신의 실수가 마치 예술품인 양 머릿속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는 감정가가 되어야 한다고.




*




우리의 초고는 모호하고 엉성하며 비문투성이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우리는 꾸준히 써야 한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말, 마르크스가 하고 우디 앨런이 인용한 이 말,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이 말은, 나름 내게 용기를 준다. 실수를 겁내지 말고 많이 써보라는 뜻 같아서.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실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나름의 해석) ^^;



나는 이 말을 슬그머니 고쳐본다.

“실수의 양이 질을 결정한다.”



아, 아니다.

실수를 무한히 되풀이해선 안 된다.

다시 슬그머니 고친다.

“실수와 수정과 작은 성공의 분량들이 모여 질을 결정한다.”



그러고나서 다시 보니,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단 역시 단순한 게 더 낫다. 그냥


“양이 질을 결정한다.”




*




휴가가 많이 남아, 그걸 안 쓰고 반납한다 해도 돈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억울해서, 뒤늦게 며칠 휴가를 내어 집에서 보낸다.

코로나도 무섭고.



내 딸은 집에 돌아와

손발 씻고나서 엄마와 함께 안방으로 들어간다.


소외당한 나는

둘이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궁금해진다.

안방 문에 다가가 조용히 엿듣는다


둘이 하는 말이 구체적으로 정확히 들리진 않지만

큰 그림을 이해할 정도로는 들린다.



그러니까

세상에 나갔다가 돌아온 

내 딸이

엄마랑

나누는 이야기는 전부 “주변의 황당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날, 아내가 전해 주는 이야기에는 전혀 다른 제목이 붙어 있다.


"우리 딸 원더 우먼”





*





연말 휴가 내고 요모조모 펼쳐 본 책들과 100자 평 

(* 주 : 연말에 출판된 것이 아님. 두서없이 집어 든 책들임)





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바버라 에런라이크

품위 있게 세상을 바꾸는 글. 우아하게 어퍼컷을 날리는 작가. 다른 계층, 다른 세상 사람들의 터전에 스며들어 같은 방식의 삶을 직접 체험한 뒤에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바버라의 다른 절판 서적을 구하기 위해 먼 곳의 알라딘 중고서점들을 가로지른 지난여름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최신 뇌과학 정보를 7개 강좌로 엮어 들려주는 책. 뇌과학 전성시대에 유튜브와 서점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허구가 퍼져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뇌의 마법과 진정한 가치를 담았다.















멘탈이 무기다 – 스티븐 코틀러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술을 소개한다. 몰입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유용한 방법을 논하는 자기계발서인데, 쉽지는 않다. 정독해야 가치를 알 수 있다.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 대니얼 데닛

철학과 과학을 연계하는 글쓰기. 그가 소개하는 77가지 생각도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지적 무기에 가깝다. 첨단무기 사용 설명서처럼 꽤 어려운 구석이 많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음미하기 시작하면 흥미진진한 주제들에 심취할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책임한 추천.)














STATISTICS Using Stata – Sharon Weinberg and Sarah Abramowitz

케임브리지 대학출판 서적답게(?) 쉽고 친절하다. 우울할 때 통계학을 읽거나 파이썬이나 Stata 코딩에 빠져든다. 실력은 없어도 이런 논리의 세계로 도피하는 이유는 있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에 매료되고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 하비에르 마리아스

세 번째 정독하는 장편 소설.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우울과 페이소스가 뒤섞인 사색적인 문장들은 꼭 밤에 읽어야 한다. 작가의 호흡과 스타일에 젖어 들지 못하면 지루하고 읽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빠지면, 밤을 꼬박 새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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