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방안의 가득한 책들을 제대로 정리·정돈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책들을 4개 공간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종으로는 문학과 비문학. 횡으로는 비극과 희극이다. 즉 (1) 문학이면서 비극적인 작품 (2) 문학이면서 희극적인 작품 (3) 비문학이면서 진지한 작품 (4) 비문학이면서 유쾌한 작품.
나는 지금 (2)번 계열의 책을 읽고 있는데,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33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이다. 영미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등장인물들이 P.G. 우드하우스를 언급한다. 그러면 괜히 반갑다. “천하 태평한 작가가 쓴 천하 태평한 인물들의 일상적 모험 이야기.” 내가 혼자 나름 정의해본 P.G. 우드하우스의 작품이다. 이 작가와 이 작가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생을 그저 장난처럼 느끼고 싶어하는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오히려 애초부터 인생은 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인생은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 무엇이 아닐까, 하고 잠시 고민하는 것 같다. 이 점에서 역시 나는 어중간하다. 나는 이자크 디네센, 아베 코보,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같은 그런 글을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P.G 우드하우스 같은 그런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깨달음. 이 역시 내가 인생을 그저 장난처럼 여기고 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을 진지하게 산 적도 없고 동시에 인생을 과감하게 장난으로 여기며 용감하게 산 적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술에 기울어져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G 우드하우스의 작품 속 주인공 지브스.
귀족의 하인이면서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지브스.
현대에서 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가 등장하는 책을 읽거나, 혹은 그의 이름을 아디로 사용하는 정도일 것이다.
*
"지브스." 내가 말했다. "자네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가끔 한가한 시간에 생각해 봅니다. 주인님."
"우울하지. 그렇지?"
"우울하다고요?"
"내 말은, 눈에 보이는 것과 실체가 다르다는 얘기야."
"바짓단이 반 인치쯤 올라간 것 같습니다, 주인님. 멜빵을 조금만 조정하면 될 겁니다. 방금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주인님?"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의 단편 <지브스와 임박한 파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