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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재
  • 예수전
  • 김규항
  • 11,700원 (10%650)
  • 2009-04-13
  • : 4,914

이책은 어느정도 팔릴 줄 알았다. 저자의 홈피에서 출간 이전부터 그의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글이 자신을 어느정도 표현해 내었을때 작가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향기다. 나는 준비하던 시험을 얼마 앞두지 않은 채 틈틈히 읽었다. 

 첫 느낌은 1990년대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좌파의 자기자존감 이었다. 

90년대 이후의 모든 글들은 80년대의 한자락을 뒤집어내는것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것을 탓할수는 없다. 글쟁이들은 다들 많이읽고 세상에 고민이 많은 이들이기에,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그들은 더이상 80년대의 구호들이 먹히지 않을것을 알아채고 자신이 먼저 외쳤던 구호들을 이제 자신이 왜 지지하지 않는가를 조목 조목 설명하였다. [B급좌파]로 시작된 그의 글들의 일관된 주제는 그러한 먹물들에 대한 환멸과, 그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수 없으나 해방의 지침으로서 보다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었다. 그 자신도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를 담지 못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B급이라 불렀다. 

  그런데, 예수전을 통해 그는 이지점을 극복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대안에 대한 고민이나 과거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없이도, 지금 이순간 이후 더이상 현재의 사회체제에 대해 타협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것을 스스로 선언하고 일어섰다. 그는 이를 위해 예수에 기대었다. 그가 예수에 기대었기에 신학과 사회과학사이에 애매한 경계에 섰으나, 이제 그는 더이상 주변에서 툴툴거리던 어법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좌파로서의 자존심으로 홀로 섰다. 나는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자존감이 넘치는 글을 처음 보았다.  

 여전히 격렬한 구호도 넘치고, 조용히 투쟁을 권하는 조직활동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자기확인하는 저항을 오랜만에 보았다. 그것은 투쟁으로 자유를 획득하려는 자가 반드시 자신의 뱃속에 깔아두고 시작하여야 하는 문제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서로를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내 옆에 있는 민주노총 활동가, 민주노동당 활동가, 전교조 활동가들을 우리 조차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바로 거기에 우리의 극복 지점이 있다. 그가 예수에 기대어 출발한것은 두고 두고 하나의 문제가 될 것이지만, 저항하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홀로 선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환점이 될것이다. 

 

두번째는 이제 김규항과 선긋기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B급좌파]이후 나는 그의 팬이었다. 내가 쓴 그의 다른 책에대한 서평에도 썼지만, 나는 그가 B급좌파에서 추천했던 책을 모두 따라 읽었다. 그래서 장정일을 읽었고, 김수영을 읽었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러 윤엽이라는 젊은 판화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에 기대어 일어섰기에, 그는 이제 후퇴할 수 없는 자리에 섰다. 그의 변화는 이제 예수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의 변화는 이제 예수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예수]를 논한 순간, 이제 그는 예수를 따르던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여야 한다. 그것이 근본주의자의 숙명이다. 그의 동료들이 수없이 그에게 말한다는 대로, 그는 이제 "피곤한 삶"으로 들어섰다. 당연한 일이다. 예수를 이해한 사람, 부처를 깨달은 사람은 이제 예수나 부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근본주의에 반대한다. 이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하고 완전한 규벙이 존재함을 상정하고, 그에 맞지않는 주장을 그 완전규범에 빗대어 내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이제 그 온전한 규범, 예수가 핵심을 내비쳤던 그 규범의 완성을 위해 저자는 더욱 외로워지고, 더욱 협상에 있어서 구체성을 잃을것이며, 내일을 위해 한발을 내딛기 위해 애쓰는 노력들을 "규범에 맞지 않는다"하여 온전히 칭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걸어 가시라. 그 길을 위해서. 누구도 그 스스로 온전할 수는 없다. 우리가 온전하길 원하는 것은 사회의 온전함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 스스로 온전하지는 않다. 당신의 애쓴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성경을 손에 잡은지 실로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예수가 뭘 하다 죽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말대로(B급 좌파이후 당신이 책에서 시킨것은 다하고 있다) 성경을 다시 읽었다. 마가복음을. 예쁘게 가죽으로 포장되어있는, 두꺼운 그 성격책에는 짧은 주석까지 담겨 당신이 해석한 마가복음의 내용이 하나라도 읽는이들에게 전달될새라 막고 또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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