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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재

술이 취해 선배집을 찾았다. 책을 좋아하는 양반이라 벽하나에 책이 가득한데,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열라많은 일들"류의 책들은 한권 없고 누가 사보지도 않을 만한 책들만 놓여 있다. 그중에 한권이 조선상고사. 유명하나 실제 본적없던 책이라 몇장 넘기다 결국 끝장을 넘기고야 덮을 수 있었다.

 

첫장, 목차. 어디서 들어본적도 희미한 조선의 옛 역사를 적어내려간 목차를 보자마자 턱 목이 막힌다. 일본에 나라뺏긴지 20년 세월에 - 특히 1930년대는 이제 일본의 한민족 지배가 앞으로도 별로 흔들리지 않을듯 굳어져가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하던 시대 아닌가. 40년대가 되면 일본군 위안부로 나가라고 신문에 글을 쓰고 젊은이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다니던 지식인들이 생겨나던 그때. 오히려 조선이 중국과 겨루고 다투던 얘기 - 장수왕 이전의 고구려 왕들은 한반도가 문제가 아니라 대륙을 주로하여 사고하였다고 또박또박 밝힌다. 땅좁은 한반도는 우리 민족의 주된 역사에서 사실 부차적인 문제였다고 안목을 바꿔놓는다. 왜(倭)는 작다는 뜻인데, 일본인들이 왜라고 하지 않고 대화(大和)족이라 하는것에 "일본 말에 倭와 和가 발음이 같은것을 두고"한 장난질이라 일갈하신다. 헌병이 칼을 차고 다니던 때에 거침없이 "쪽바리들"을 신문지상에 써둔 것이니, 고래의 서적들 가운데 오직 우리 민족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강조한 듯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필요성에 공감이 간다. 고개가 끄덕여 진다. 말로 만 전해듣던 "일본을 생각하여 머리를 굽히는 것이 싫어 세수하실 때에도 머리를 든채 세수를 하셨다"는 그 태도가 글귀 하나 하나에 새겨진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빼고 [조선상고사]의 텍스트 만을 보자면, 이 글은 하나의 '관변저술'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사실 민족주의는 나라의 문제점과 모순을 덮고 축구로 하나되자는 집권세력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원래 우익의 것이요 좌익은 이를 경계하여 민족주의를 비난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에서는 우익은 민족을 팔아먹고 오직 일본의 이익을 지키자 주장하며 자신과 일족의 영달을 차지하였고, 오히려 이처럼 좌익의 경향을 가진 이들이 민족주의를 깊이 연구하고 패배감에 빠진 민중을 격려하려 하였다. 본래 우익의 것이었으나 우익에게서 버려졌던 민족주의가 2007년에는 다시금 우익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짐짓 걱정이다. [주몽]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국에게 똑부러지게 자기말을 못하는 것은 여전하고, 허름한 페이퍼백에 찾는이 없던 조선상고사가 양장본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은 좋게 다시 태어났으니, 이제 그속에서 선생께서 진정 바라신것은 무엇인가 찾는것은 후손의 도리일 것이다. 나라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압박은 여전하고, 오히려 나라가 둘로 쪼개져 강대국들의 '이이제이'에 놀아나고 있는 현실을 선생께서 지금 보신다면 과연 무어라 하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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