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구매. [B급좌파] 사다가 알라딘이 친절히 알려주는 [B급좌파]를 구매한 분들은 이책도 샀다이놈아 하길래 샀던. 뭐... 그럭저럭 읽을만했던 책.
이책에서 놀랐던 것 하나. 책에 소개된 여섯 중에 '한비야'가 가장 열정적이었다는 것. 2000년대의 지식인들에게는 '80년대로부터'의 자기자신이 설명되어야 하는데, 한비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구속받는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자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운동하는 이들에게서 보지 못한지 꽤 오래된 에너지였다. "여러분은 행복의 정의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정의는 딱 한가지에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딱 맞아 떨어지는 그 일을 하는 것. 그런데 이 긴급구호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에요"
한비야의 그 말은 여름에 만났던 한 후배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참 재미없어 보이는데, 그는 계속 운동을 하겠노라 하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었다. "너는 왜 운동을 하니"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제는 운동을 하고싶어서 했었나요. 해야되니까 하는거지" 자기에너지가 없는 집단이 어찌 미래를 선도할 수 있을까. 한비야의 실천은 기껏 지식인 내지는 오지까지 갈 경제적 여력이 있는 자들의 자위일 뿐이고, 세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비야류의 실천은 아무 의미도 없다며 여전히 우리는 한비야를 폄하할 수 있을까. 6인의 강사들 중 한비야의 강연이 가장 먼저 옮겨진 책이여서인지, 나는 그 뒤에 따라온 묵직한 강사들 - 홍세화, 박노자, 한홍구의 글에서 힘을 느끼지 못했다. 후자의 세명의 글은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누구나 올바르다고 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실에서 별 힘이 없어보이는 그런 내용이었다고나 할까. 그들의 글은 사실 제목만 보고나면 더 읽을 힘이 없게 된다.
마지막 오귀환의 글. 다시 퍼뜩 정신나게 하는 글. 오귀환은 '기획가'였다. <한겨레21>의 창간을 주도했다는 그는, <인터넷한겨례>를 그후 창간하고, 지금은 그가 요새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매체와 문명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한겨레21>의 산파였다는 그의 이력의 무게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가장 감각적인 영역에서 최선두의 기획을 계속해내고 있는 그의 현실감은 나를 굉장히 끌어당기게 하였다.
오귀환의 글은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었던 이수만의 인터뷰기사와 비슷한 끌림을 주었다. 이제는 한국 연예기획계의 큰손이 된 그인데, 그의 인터뷰중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SM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은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수만은 답했다. "그사람들은 안되는 것만 하라고 말을 한다" 그는 앞으로 미디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그 중심에 이동통신사가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이동통신사는 전국민이 다들고다니는 핸드폰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거기에 콘텐츠를 독자 공급하는 미디어 왕국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업계의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에 놀랐고 - 그것은 하나 하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올바른'사람들의 비판에 대한 그의 대답이 한편으로는 '올바른'사람들의 현실에서의 힘에 대해 얼마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홈피에 쓰느라 다시 들춰본 이 책. 처음 볼때는 힘없게 느껴졌던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다시 끌린다. 그가 많은 지면을 할애한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 때문이다. 자본가들과 그들이 세운 정부는 계급갈등이 첨예해 지면 사회를 통합할 명분을 잃는다. 그들이 얘기한 국민국가는 결국 환상이며, 그 국가에는 두개의 국민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바로 그때 - 불황의 국면에 -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열풍속에 왜 이 드라마들이 하필 지금 인기를 얻는 것인지 새삼 다가왔다고나 할까.
"일본의 파쇼화가 바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파쇼화의 목적 중 하나가 '좌파를 궤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궤멸시킬 만한 좌파조차도 없다는 것이 일본의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1996년엔 학생운동이, 그 다음엔 민주노총이, 그다음엔 전교조가... 그리고 이제는 노무현정권으로 브랜드화 된 386이라는 이름의 '좌파'전체를 궤멸시키기 위한 자본의 공세가 계속된다. 단순히 2007년 대선국면의 문제가 아닐것이다.
김규항의 말대로, 홍세화 선생은 아직도 기품있는 전사라는것을 새삼 느낀다.
나부터 버려야 한다. 민족주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