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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칼럼집 [B급좌파]에 너무나 빠져들었기에, 그가 그 책에서 권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잡은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였다. 김규항의 추천 이전에, 내게 장정일은 도색소설을 쓰는 그저 그런 작가로 기억되어 있었기에 - 더구나 '독서일기'라는 형식은 왠지 사서 부러 읽기에는 좀 가벼운 형식이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에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사물을 나 자신의 잣대로 보기 보다는, 다른 이의 평가에 의해서 '브랜드화 되어야' 비로서 그에대한 안목을 가지게 되는 저열한 눈높이 때문인지, 김규항의 추천이후 장정일은 대단히 새롭게 다가왔다. 하긴, 그게 장정일의 글을 제대로 읽은게 처음이었으니 당연히 새로울밖에 없었겠지만...
[독서일기]3편은 1995년와 1996년, 그리고 1997년 초까지의 그의 독서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시기는 장정일에게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3편까지의 일기를 쓰고 그는 감옥에 가게되기 때문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3편의 많은 부분은 음란과 도덕에 대한 주제를 다룬 다른나라, 다른 작가의 글들에 대한 독서가 꽤 많은 주제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이 어디 있는가와 무관하게, 나는 왜 김규항이 그를 추천할수 밖에 없었는지를 곳곳에서 목격하며 적잖은 상쾌함을 느꼈다. 표현의 방식이 달랐다 뿐이지 - 그렇더라도 그의 폐쇄적인 생활방식과 전혀 일하는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그 자신도 몸쓰는 일과는 전화 무관한 듯한 일상은 나에게 여전히 거부감을 일으킨다 -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지식인이며, 87년의 영광과 90년대의 지식인들의 변절에 대해 김규항 못지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철저히 개인적인듯 보이는 그의 글은 어설픈 사회화 - 어쩌면 더 정확히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 반발이다. 그는 결코 사회에 무관심하거나, 개인의 감정자체에 침잠하는 그런 작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좀머씨 이야기]의 유명한 대사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라는 대사에 대해서, 그는 '그런 좀머씨를 견딜수가 없다'라고 쓴다. 좀머씨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혐오하고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좀머씨를 비롯한 그의 많은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적대감과 외면은 세계가 그것의 원인이 아니라, 바로 그의 냉소가 그런 세계의 원인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김규항이 김어준에 대해 처음 가졌던 선입관을 딴지일보를 찬찬히 본 후 바꾸게 되었다고 말한것처럼, 이 대목에서 나역시 그에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김규항은 또한 "세상에 대한 열정을 선천적으로 면제받았다"는 신세대 작가 송경아에 대해서도 대단히 냉소적이다. 그는, 80년대의 변절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90년대의 비사회화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는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는, 80년대 사회주의와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변절과 이유없는 변화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갑작스레 시대의 변화를 논하며 후일담 문학을 쏟아내는 작가들에 대해 그는 일갈한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맹인들이었으나, 그들을 관통한 세월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실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체하게 해주었다. 문화형성이니 모조현실과 같은 거품의 사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실존에 대해 사고할 절호의 기회가 90년대의 신세대에게 주어졌으나, 한번도 실존의 삶을 교습받아 본 적이 없는 신세대식 실존주의는 치기 어린 '육백만불의 사나이' 들을 그들이 쓴 소설 나부랑이 곳곳에 게워내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도달한 하나의 결론은,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자기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김규항이 "B급으로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좋겠다고 한 것처럼, 그역시 순수한 욕망 그 자체를 통해 늘 사회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지식인들에 대해 최소한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싶다.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그 시도는 과도적일수 밖에 없고, 진정으로 80년대를 벗어났다기 보다는 80년대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다.
김규항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사법처리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정리한 변론문 - [독서일기 3]의 마지막 글이기도 하다 - 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글만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결국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구속되었을때 때마침 소위 '한총련 연세대 사태'로 인해 구치소의 독방들이 꽉 차 있을때였던지라, 그는 10여명의 절도범과 한방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그와 같은 층의 독방에 갖혀 있었는데, 저녁식사시간을 마치고 심심해진 재소자들은 감방 창문을 붙잡고 장정일을 불러대었다.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한번 해봐~~"
그 기간이 그에게 얼마나 참혹하였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