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이다. 씨네21의 맨 뒷면(한겨례21이었나?)을 언제나 가장 먼저 펼치게 만들었던 그의 맛깔쓰런 글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아마도, '박노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이렇게 명쾌하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 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글은 이후 내가 운동의 이름으로 자기 욕망을 포장하는 이들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었다.
그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를 욕하는 역시나 씨네21의 글이다. 어떤 글에선가 김규항이 여성운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썼었는데, 그에 대한 논박중에 나온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논쟁이야 - 특히나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이야 - 흔한 것이지만, 그 글이 기억나는 이유는 김규항을 비판하는 글을 게제하는 씨네21 편집장의 글 때문이었다. 편집장은 책 첫머리의 편집자의 글을 통해, 두사람 모두 그 진정성을 익히 잘 아는 이들이라, 고민끝에 그 글을 원문대로 싣는다고 아주 힘겨운듯이 적어놓고 있었다. '아니 도데체 무슨 글이길래 이렇게 유난을 떤다냐'싶었는데, 편집장이 걱정하며 그대로 실은 어느 페미니스트의 글은 "야 이 개새끼야"로 끝맺고 있었다.
나는 그 표현을 그대로 실은 편집장의 모습에 놀랐다. 꼭 그래서인지는 나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김규항은 그 뒤 그런 식의 칼럼쓰기를 그만두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글에서 늘 묻어나는 그 씁쓸함이 이 사건으로 한켠 더해지게 된 것일까. 하긴, 그에게 있어서는 이상을 간직한다는것은 늘 상처를 받게되는 과정이라는것이 글 곳곳에 깔려 있다. 크리스챤이라는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것을 포기한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예수의 삶에서 넘어설 수 없었던 지점은, 그가 보여준 삶의 폭이 인간이 이룬 어떤 선한 그룹에서조차 결국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몰려 죽었지만(당시 로마 식민지령에서 십자가 처형은 민족해방운동가들에게 사용되었다. 물론 전시 효과 때문이었다.) 정치범이 아니었다. 그를 죽이는 일은 로마 식민정권, 유태괴로정권, 유태교 지도자들 같은 압제자들간의 합의였을 뿐 아니라 예수가 잣니들의 정치 혹은 영혼의 해방을 이루어 줄거라고 빋고 따르던 제자들과 민중들의 합의이기도 했다...."
하긴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졌을 지 몰라도, 김규항의 글쓰기는 언젠가는 그런식으로 끝내는게 정해져있는 글쓰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80년대의 이상을 이처럼 개판내버린 '유연한'지식인들과 동료들에 대해 사시미 칼로 저미는 듯한 비판을 날렸지만, 정작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제시할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비판은 아무리 현재를 소재로 하고 있어도 본질적으로 회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김규항은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찾아 미래를 향한 움직임을 쉬고 있지 않지만, 순수한 운동의 과거를 '지키는 것 자체'를 하나의 운동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것을 보면, 이제 그만 80년대와 쫑낼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이미 사람들은 다 쫑냈는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깨닿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