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게 '설'은 홍어다.
큰집 대문을 넘어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밖에 없는 홍어의 미친 존재감을. 집안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홍어 삭힌내에 내 몸 구석구석의 세포가 눈을 뜬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질 수 없는 너의 향기. 설을 쇤지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너를 마주한다. 애초에 회를 즐기지 않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너. 이미 네 체취에 흠뻑 젖어있건만, 밥상 위에 적나라하게 발려있는 넌 또다른 얘기다. 도대체 어떤 위인이 날 것으로도 모자라 일부러 썩, 아니 삭혀먹기 시작한 것인지.
다들 덥썩덥썩 집어먹지만 내 젓가락만은 너를 피해간다. 이런 나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는 아부지. 사람들이 좋아하는덴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굳이 (강)권한다. 절레절레 하다가도 동생이 먹기 시작하면 (오 신이시여..) 결국 먹을 수 밖에 없다. 숨을 참고 초장에 듬뿍, 아주 듬뿍 담가 먹는다.
홍어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걸까.
2.
내겐 종교가 홍어 같았다. 무슨 맛인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 덕에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딩 3년 때는 인기 만화 '쥬라기 월드컵'까지 포기해가며 첫영성체를 받았지만, 머리통이 굵어지면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인데 신에게선 답을 찾지 못했다.
난 그저 부모 덕에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 삶 자체가 고통인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약자를 억압하는 이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용기내어 정의를 말하는 이들은 보복을 당했다. 힘 있는 자들이 세워놓은 프레임 안에서 아둥바둥 사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런 세상을 방치하는 신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왜 천주교를 믿느냐고 물어오면 뭐라 답할 자신이 없었다. 홍어는 명절 때마다 한점씩 집어주는 아부지라도 있지, 성당은 딱히 나오라는 사람도 없었다. 성경은 따분함 그 자체였다. 거기 나오는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지하는게 싫었다. 약해 보이기 싫었다.
3.
"당신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 거죠. 당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줄 이야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라면 보다 높이, 멀리 그리고 다르게 보지 않아도 되니까. 당신들은 무덤덤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붙박이장 같은 이야기, 메마르고 부풀리지 않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파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뜨끔했다. 애초에 난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구나. 속지 않겠다고 팔짱을 낀채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구나. 세상은 어쩌면 이해하기 전에 믿는게 먼저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게 아니라,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썼구나.
홍어를 맛있게 먹기 위해선 일단 홍어가 맛있다고 믿어야 했다. 여전히 홍어'만' 먹는건 내키지 않지만 이제는 안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의 궁합에 홍어가 껴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아니 그래야만 삼합이라는 신묘한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즐거움을 말이다.
내가 신을 믿는건 이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한번 믿어보는 것이다. '파이'라는 무의미한, 아니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의 나열에서 애써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내 하찮은 삶이, 내 보잘것없는 몸부림이 무의미하지 않길 바라며.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원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
Believe the Unbelievable."
그것이 인생은 아닐까.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평화를 빕니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뭔가를 덧붙이는 거예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 파이 이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