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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그래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 14,400원 (10%800)
  • 2010-08-02
  • : 19,515

올초에 읽었던 '나목'이 그녀 인생의 중간 지점인 마흔에 쓴 데뷔작이라면, 이 책은 그로부터 다시 40년뒤 그녀의 삶 끄트머리서 남긴 마지막 산문집이다. '나목'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고독하기 그지없는 황량한 삶을 보여준 그녀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한 마음에 집어들게 됐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건 그녀의 삶이 참으로 불'운'했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 오빠를 잃은 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엔 아버지를 여의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아들까지 연달아 떠나 보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고 써놓을 정도이니 나같은 사람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이 꼭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불운 때문에 이루지 못한 그녀의 꿈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그녀는 아직 글을 쓸 수 있어서, 그리고 집 앞 마당을 가꿀수 있어서 매일같이 기쁘다고 책에 적고 있다. 이처럼 '나목'에선 볼 수 없는 그녀의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연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책을 읽는 나마저 기분좋게 한다.


불'운'했지만 꼭 불'행'하지는 않았던 박완서의 삶은 '결핍'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결핍은 그 자체로는 반갑지 않은 것이지만 극복할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감옥살이가 그로 하여금 '죄와 벌'이라는 대작을 쓰게 만들고, 박완서의 불운이 그녀를 평범한 학교 선생이 아닌 손꼽히는 소설가의 길로 이끌었듯이 말이다.


물론 이 같은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불운은 곧 불행이 된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가 그랬고, 영화 '화차'의 김민희가 그랬듯이 말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나라면 저런 버거운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불운을 안겨주는 '그'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따위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출생의 불'운'이 인생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누구든지 노력만하면 자신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이 꿈도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대로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완서가 글쓰기를 통한 '몰입'과 천주교를 통한 '믿음'에 기대어 어떻게든 버텨냈듯이.


답은 각자 찾아나가는 것이겠지만 그리스인들의 태도는 한번 참고할만하다. 박경철에 의하면 그들은 "삶은 기본적으로 행복한 것이며, 인간은 경이로운 존재"라고 그리고 "삶의 과정에 가끔은 행운이 때로는 불운이 교차하지만, 행운/불운과 행복/불행은 다른차원의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저번글에 썼듯 '운'에 좌우되는 칠할은 "할수 없잖아"라며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 아닌가 싶다.


아무쪼록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 오늘도 잉여력을 발휘하여 끄적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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