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숨
얄븐독자 2025/11/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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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 한유주
- 9,000원 (10%↓
500) - 2020-11-05
: 402
그렇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 고작 몇 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려면 몇 초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생각했다. 밤에는 누워서 가슴에 칼을 꽂는 방식에 대해, 가슴에 칼이 꽂히는 각도에 대해 생각했고, 낮에는 길 위에서는 도로에 뛰어드는 방식에 대해, 내 몸이 그릴 포물선의 정확한 형태에 대해 생각했고,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폐쇄된 공간에서는 역시 칼을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나는 매 순간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몇 초에 한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정신이 말짱했어, 그러니까 하루에 한두 번씩, 어쩌면 서너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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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라는 제목 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나뉘는 그것은
숨이 이어지지 않으면 죽음이 된다 아니면 죽음이 온다
숨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고 죽음에 관한 이야긴 또 숨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고
소설을 감히 내 주제에 쓴다면 이런 소설 같은 소설을 쓰지 않을까 쓰고 싶은게 아닐까 이런 것밖에 못쓰지 않을까 결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긴 하겠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분명
현실에서 작가는 소설속 사람 처럼 안산에 있는 s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기도 한다 그러면 소설이 ‘진짜‘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안산의 s대학에서 중앙역 까지의 거리와 그 부근의 동네를 잘 안다 많이도 걸어다녔고 한때 거주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목 매달아 자살 한 친구의 이야기 역시 안산에 살던 때 갑자스런 교통사고로 황망히 죽은 젊디 젊었던 지인의 장례에 가던 그 겨울밤의 혹독했던 풍경을 고스라니 떠오르게 했다
유명인의 부고 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따른 장례는 어쩔수 없이 죽음이라는 그 뭔가를 생각케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자연스레 지나가더라도 늘 매일매일 죽음이 생각 나는건 막을 수 없다 매 순간 ‘숨‘을 쉬기 때문이다
소설속 사람이 안산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에서 비둘기의 사체를 보고 또 반려견들의 죽음을 통해 친구의 죽음을 계속 꺼내어보지만 그런 외부적 자극이 없음에도 내부의 누가 쉼없이 이야기 하는 죽음에 익숙한 나머지 누군가는 터부시하고 회피하는 죽음이란 것이 밍숭밍숭한지 오래다 오히려 삶 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는 나름의 결론 역시 오래 되었다
여하튼 구매 당시에 읽었더라면 무엇을 지껄였을까 싶기도 하면서 지금은 또 이런걸 떠들고 있구나 싶고 죽기 전이기 때문에 화자처럼 죽음을 구체적으로는 자살 생각을 할 수는 있는 것이고 그러면 밥을 먹고 뭔가를 읽는 것으로 치욕을 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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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이해한 순간 부터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021
나는 죽음이야말로 애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053
나는 죽음에 대해서라면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085
나는 나를 치울 수 없었고 나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고 영원히 나를 버리고 싶었다. 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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