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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집요(聖學輯要)
이이 / 김태완 / 청어람미디어 / 686쪽
(2014. 03. 23.)

 

 

  이 책은 제왕이 학문을 할 때 근본이 되는 것과 말단이 되는 것, 정치를 할 때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이 본래 타고 난 덕을 밝힘[明德]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제 효과와 백성에게 덕을 자각하게 하여 새로운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新民] 실제 자취의 얼개를 모두 대략적으로나마 밝혀놓았습니다. 작은 일을 유추하여 큰 일을 인식하고, 자신[此]을 근거로 삼아 대상[彼]을 밝힌다면 참으로 온 세상의 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신의 글이 아니라 성현의 글입니다 비록 신의 식견이 천박하고 콱 막혀서 앞뒤 순서도 없이 엮었을망정 여기에 모은 말씀은 한 글귀가 곧 한 가지 약과 같아서[一句一藥] 어느 것 하나 몸에 절실한 교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정자[程子]는 "학문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말은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의 말이라도 따르면 도에 들어 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설사 이 책이 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변변치 못하다고 해서 말까지 버려서는 안 될 터인데 하물며 성현의 말씀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제 만 번 죽움을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책 세 권을 흰 보에 싸서 임금님께 엎드려 바칩니다. 혹시라고 임금님께서 이 책을 열람하여[乙覽] 이전 성현의 교훈을 깊이 음미하고, 선왕들의 빛나는 업적을 계속 이어서 빛내도록 더욱더 노력하여 땅처럼 넓고 두터워서 만물을 싣고, 하늘처럼 높고 밝아서 만물을 덮어주는 덕을 갗추는 경지에 이르신다면 변변치 못하나마 충성을 다하려는 신의 뜻을 조금은 펼 수 있겠습니다.

(P. 12)

 

 

  학문을 할 때는 본래 널리 배워야지 지름길을 따라 요약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배우는 사람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넓히는 것만 일삼으면 마음과 생각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아 취하고 버리는 것이 정확하지 못하고, 혹 본질에서 벗어나 진실을 잃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먼저 요긴한 길을 찾아서 확실하게 문과 뜰을 열어 놓은 다음에라야 제한된 분야가 없이 널리 배울 수 있고, 한 가지 사례를 유추하여  앎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한 몸은 나라의 모든 일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때는 많고 글을 읽는 때는 적으니, 만약 그 강유룰 붙잡고 그 종지를 정립하지 않고서 오로지 넓히는 데만 힘쓰면 문장을 기억하고 외는 습관에 얽메이거나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다듬는데 빠져서 진리를 탐구하고, 마음을 바로잡으며,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도에 관해서는 반드시 참으로 터득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P. 19)

 

 

  글을 읽으면서도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처음 배우는 사람의 공통된 문제이다. 이것은 대부분 평소에 많이 읽기만 하고 많이 얻는 데만 힘썼을 뿐 자세하게 터득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대충 이것저것 마구 읽은 탓이다. 지금 이런 일을 깊이 경계하여 말끔히 씻어 없애고 따로 규범을 세월 글을 보되. 더욱 중요하고 가장 급한 것을 택하여야 한다. 또한 책 한 권을 보되 하루에 힘을 쓸 수 있는 만큼식 한두 단락을 보아서 한 단락을 깨달은 뒤 또 한 단락을 보아 책 한 권이 끝나면 다른 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가운을 고르게 하여 자세히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귀결되는 곳이 있고 여러 학자들이 주석과 풀이가 하나하나 일관되게 통한 다음에라야 옳고 그름을 비교하여 성현이 말씀하신 근본 뜻을 찾을 수 있다. 비록 터득하였다 하더라도 또다시 되풀이하여 되새겨서 의리가 살에 배고 골수에 젖은 다음에라야 학문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을 때 처음에 의문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다음에는 점점 의문이 생기고 중간에는 마디마다 의문이 생긴다. 이런 고비를 지난 뒤 점점 의문이 풀리고 여러 가지 사리에 통하여 의문스러운 것이 모두 없어져야 비로소 배웠다 할 수 있다.
(P. 76)

 

 

  "독서를 하는 방법은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검증하여 그윽하고 한가로운 가운데 조용히 한 곳에 집중하여 마음속으로 깨닫고 책에 씌어진 말고 표현된 의미를 넘어서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와 같이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평소에 글을 읽을 때에는 깨달은 것이 있는 듯하지만 책을 놓기만 하면 평소 그대로인 것 같은데,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자가 대답했다. "이것은 몸에서 구하지 않고 오로지 책에서만 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나의 일생생활에서 도가 아닌 것이 없다. 글이란 이 마음을 도와 연결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몸에서 찾은 뒤에 책에서 구하여야만 책을 읽어도 바로 참다운 맛이 있다."
(P. 77)

 

 

  주자가 말했다. "먼저 『대학』을 읽어서 규모를 정하고, 다음에 『논어』를 읽어서 근본을 세우며, 다음에 『맹자』를 읽어서 탁월한 점을 관찰하고, 다음에 『중용』을 읽어서 옛 사람의 미묘한 뜻을 탐구해야 한다. 『대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이햐하여 의문이 업어진 뒤에 『논어』와 『맹자』를 읽을 수 있고, 또 『논어』와 『맹자』에 대해 의문이 없어진 뒤에 『중용』을 읽을 수 있다."
(P. 83)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꾸미는 데 충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귈 때 믿음직하지 않았는가? 가르침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주자가 말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전(傳)이란 스승에게서 받은 것을 말하고, 습(習)이란 자기에게서 익숙해지는 것을 말한다. 증자는 이 세가지로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이런 문제가 없으면 더욱 노력하였다. 이처럼 그는 성실하고 절실하게 자신을 다스렸으니 학문을 하는 근본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가지의 차례는 또한 충(忠)과 신(信)으로써 가르침 받은 것을 익히는 것과 근본으로 삼는다."
(P.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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