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제러미 벤담 / 책세상 / 148쪽
(2020. 4. 4.)
근대 감옥은 과거의 감옥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흐름 속에서 발명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금 처벌의 생성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파가 나뉘기도 했고 종교적으로는 정신을 치료하는 방식에 대한 논이 난무했으며 건축에서도 새로운 건축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감금 시설 모델이 쏟아져 나왔다. 파놉티콘은 이러한 시기에 등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벤담이 왜 새로운 사회 모델로 감옥을 선택해 실험하려 했는지는 분명하다. 파놉티콘은 감옥 계획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벤담은 이 계획이 모든 시설로 확대되기를 바랐다.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히는 일을 맡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70쪽) 즉 벤담에게 피놉티콘은 사회의 모든 곳에 적용 되어야 할 모델인 것이다.
따라서 피놉티콘은 공리주의와 초기 자본주의 이론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시각 메커니즘, 즉 공간을 재배치해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으나 수감지는 감시자를 보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감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치밀한 운영 방식이나 당시 중요한 논리 중 하나인 노동 가치를 교정, 생산 이익과 완벽 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파놉티콘은 당시의 사고가 집약된 건축물인 것이다.
(P.8)
파놉티콘
프랑스어로는 피놉티크Panoptique로 발음하지만 여기서는 벤담 Jeremy Bentham이 쓰고 널리 알려진 피놉티콘panopticon으로 표기한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옵티콘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발음이 의미를 충분히 분절(판+옵티콘)하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외래어 표기 규정에 띠라 '피놉티콘'으로 한다.
(P.128)
만일 다수의 사림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 쌀 수 있는, 그들의 행동과 [인적] 관계, 생활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 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 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면 교육은 학생을 둘러싼 전체 환경의 결과물이다. 한 인간의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바로 그의 행동 전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물들에 둘러싸이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놓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단 한 사람이 다수를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가? 만일 단 한 명이 관리하는 것처럼 빈틈없이 업무가 진행된다면, 관리자들에게 일관되게 업무 지시를 하거나 감시 체계를 보완하는 조치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우리는 새롭고도 유용한 이 아이디어가, 현재까지 많은 사람 을 모아서 이뤄낸 힘을 능가하는 감시 권력을 단 한 사림에게 줄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벤담이 매우 단순한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이를 해결했다고 판단하는 현안이 있다. 그것은 감옥이다. 장점이 많은 이 원리는 적용 가능한 어떤 시설보다 입법 기관에서 가상 먼저 관심을 갖게 하는 특징이 있다. 중요성, 다양성, 어려움, 이것이 바로 이 원리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감옥에] 우선권이 있는 이유다. 같은 원리를 연속적으로 다른 시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가 요구한 까다로운 주의사항 중 몇 개만 없애 면 될 것이다.
감옥을 완전하게 개혁한다는 것은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지금까지 신체적·정신적 타락으로 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 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견고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단한 건축 아이디어로 이 모든 것을 이루려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P.19)
이 건물은 중앙의 한 점에서 각 수용실을 불 수 있는 형태로 된 하나의 벌집과 같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한다. 이 유령은 필요할 때는 곧바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 panoptique/panopticon이라고 부를 것이다.
(P.23)
결과적으로 우리는 감옥에서 진정으로 본질적인 개혁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수감자들의 바른 행동을 확고히 하면서 미래의 교정을 보장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재정 상태를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공공의 안전을 강화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도록 거대한 권력을 부여받은 단 한 사람의 인간이 있는 새로운 국가의 도구를 장 조할 것이다.
피놉티콘의 원리는 감시와 경제성을 연결해야 하는 거의 모든 시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이 [파 놉티콘〕아이디어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 쇠창살을 제거할 수도 있고 많은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할 수도 있으며 감시를 편안하게 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지어진 공장은 진정한 산업 건물로서, 한 사림이 수많은 직협을 감독하는 편리함을 주고, 개폐가 기능한 다양 한 공동 주택에는 이 원리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한편 피놉티콘식 병원은 청결함이나 환기, 의약품 관리에서
어떤 소홀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부속실[병실〕의 완벽한 분할은 환자들을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하며, 흰색 철관들은 환자가 관리인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할 것이다. 각 선택에 따라 쇠창살 대신 내부에 유리창을 설치해 기온을 유지 할 수도 있고 시선을 완벽하게 확보하기 위해 커튼을 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림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유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피놉티콘 장치를 통해 단 한 사람에 의한 용의 주도함의 이점은 다른 체계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실함보다 더 나은 성공을 보장한다.
(P.69)
<해제>
피놉티콘은 아마도 건축 분야 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축 계획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를 다루는 분야는 건축 영역을 넘어서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왜 실현되지도 운영되지도 않은, 단지 계획으로만 머문 이 건축물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일까? 푸코가《감시와 처벌) 에서 한 분석이 파놉티콘을 다시 크게 주목받게 한 계기임에 들림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피놉티콘 그 자체에 있다.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한 감시를 통해 수감자를 교정하려는 목적만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다. 피놉티콘은 벤담이 일생 동안 연구하고 생각해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 제도, 경찰 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 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표준 모델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는 당대 사회를 완벽한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로 재배열하여, 마치 만유인력으로 우주를 재구성한 뉴턴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새로운 우주를 꿈꿨다.
이익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이 세계를 구체화하는 장치 이자 사회 곳곳에 설치하게 될 기본 장치인 파놉티콘을 위해 벤담은 자신의 재산과 한창때의 20년 이상을 희생했다. 따라서 파놉티콘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자주 등장한 유토피아 모텔 중 하나다. 유토피아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라면. 파톱티콘 역시 이 런 목적에 적합한 일종의 유토피아로 불 수 있다. 그러므로 벤담의 사고의 집약이자 그가 꿈꾼 이상 사회의 축소판인 파놉티콘은 어느 하나로 제한할 수 없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 공간 장치다.
(P.71)
감금 자체가 처벌인 오늘날과 달리 근대 이전의 감옥은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본주의와 합리주의가 본격화되는 전환기 속에서 상황은 달라졌다. 변화된 사회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문제들은 기존의 사회 정의나 처벌 체계를 흔들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질서 체계가 필요하도록 했다. 당시 큰 문제였던 유랑의 급증은 경범죄로 이어지는데, 특히 먹을 것을 훔치는 등의 행위는 과거에는 괸용을 베풀었지만 더 이상은 용납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사림들에게 노동이나 처벌로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통적 처벌 방식인 신체형(특히 공개 처형)에 대한 반발로 인해 점점 처벌의 실행이 미뤄지면서 선고와 집행 간의 시간적 간격이 벌어졌다. 그리고 형벌 자체가 완화되어 주로 구금형으로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감옥에 사람이 넘쳐 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감옥은 모든 악의 소굴이자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태를 해결하고자 등장 한 것이 새로운 성격의 근대 감옥이다. 그런데 근대 감옥이 근대 법전과 함께 생겨났다거나 과거 감옥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근대 감옥은 18세기 후반 생산력이 없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구빈원이나 병원 등의 수용 시설을 모델로, 사법 기관과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근대 감옥의 출발은 처벌 그 자체에 목적을 두어 죄인이 처벌 받은 후에 사회로 바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재사회화와 교 회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감옥에 수감된 죄인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다수의 죄수들은 과거에는 그다지 큰 범죄로 취급하지 않던 행위를 저질렀으나 새로운 처벌 제도에서 처벌 대상이 된 사림들이었다. 이들 다수는 음식을 훔치는 등의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노동하지 않는 거지나 유랑자였다. 이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습득하게 하는 것이 사회 혼란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라 여겨졌으며 감옥은 이를 위한 교육 장소였다. 특히 박애주의 개혁자들은 감옥을 징벌히는 곳이라기보다는 정신을 치료하는 곳으로 여겼다. 나아가 당시의 정신병을 치료히는 의사들은 범죄는 '질병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수용실은 '범죄의 진정한 의무실' 이며 감옥은 '정신의 병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벤담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감옥 이외에 파놉티콘의 중요한 적용 대상이 바로 학교와 병원이었다는 점에 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건축사의 흐름에서도 병원은 근대 감옥 건축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모델로 간주되었으며 근대 학교 건축은 감옥 건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P.77)
근대 권력과 파놉티콘
푸코에게 파놉티콘은 근대 '권력'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장치다. 피놉티콘을 통해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운 권력 행사 방식의 등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푸코에 의해 정의된 '권력' 이란 무엇이며 파놉티콘에서는 어떻게 행사되는가?
파놉티콘 내에서 드러나는 푸코의 권력의 개념은 다음의 두 가지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권력은 소유히는 것이 아니라 '작용'한다. 두 번째로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하는 것이다.
파놉티콘에서 권력은 권력을 소유한 감시자 혹은 사법권자와 피권력자인 수감자의 관계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보다는 시각적인 봄-보임의 불평등을 통해 규율의 내면화를 이루게 하는 그 작용 자체가 권력의 특성이며, 과거의 보여주기 위한 공개 처형 같은 가시적이고 드러나는 권력의 작용이 아니라 은밀하고 숨겨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권력망에 있게 되는 것이 근대에 나타나는 권력 작용의 방식이다. 또한 과시하며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 대상자의 신체를 대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생체권력(bio-pouvoir)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편 권력은 신체를 억압하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한 방식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파놉티콘의 공간적인 주요 원리를 수용실과 감시탑이라 했을 때. 수용실(2~4명을 수용한다 할지라도)은 각 수감자를 공간적으로 분리함으로써 권력이 작용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 된다. 개인별로 나눔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신체'로 단위화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놉티즘의 작동은 자기 감시 메커니즘의 내면화를 통해 '순종적인 신체' 혹은 규칙에 따르는 신체를 만든다.
(P.120)
파놉티콘에서 찾아내는 것은 감시만은 아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감시로 인해 내면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결국 사회에 익숙해지는 방식이다. 만일 현대 문명과 격리되어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살아야 할 경우, 적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에 삽입되지 않은 모래알 같은 상대에서 하나 둘씩 복잡한 사회 구조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며. 마치 복잡한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적응이 필요한 우리시대의 생활양식은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리는 우리 삶에 어떻게 익숙해져가는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이 질문의 출발점으로 피놉티콘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길이 피놉티콘의 심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파놉티콘이 확장해가는 지적 영역은 매우 방대하다. 이미 푸코라는 프리즘이 파놉티콘의 다영한 형태를 드러냈지만, 앞으로도 각각의 빛은 계속해서 더욱더 분화되거나 다른 색과 결합해 확장할 것이다.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