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어스 / 전은경 / 문학동네 / 128쪽
(20.2.27.)
오름은 그의 정신을 해방시켜 멀리 위쪽 우주의 어느 장소로 인도했다. 온갖 예술 아이디어가 만나고 결합하는 곳이었지. 물질도, 생명체도, 단 하나의 원자 재료도 없는 행성이었지만 상상력이 뭉쳐 있어서, 가까이 있는 별들을 춤추게 했지. 내 친구는 그곳에서 순수한 판타지에 푹 잠겨, 대부분의 이들은 평생 겸험 못할 힘을 가득 채웠다. 그 힘의 장에 한순간만 머물러도 장편소설을 너끈히 생산해 낼 수 있었지. 모든 자연법칙이 사라진 것 같은 기이한 장소였다. 차원들이 정리 안 된 원고처럼 겹쳐 있고 죽음은 그저 허튼 농담이고 영원도 눈 깜짝하는 순간과 같은 곳. 그 장소에서 돌아온 내 친구의 머릿속은 이미 모두 결합되고 갈고닦은 단어와 문장과 아이디어로 꽉차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냥 줄줄 쓰기만 하면 되었어. 그는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너무 탁월해서 행복했지만, 자기가 직접 기여한 것은 거의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 내 친구는 오름의 영향력 아래이 이야기를 쓰고 여러 번 읽고 나서 자신이 정말 시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P.53)
이 모든 일이 왜 네게 일어났는지 이상할 거야. 아주 간단해. 너는 글을 너무 잘 써! 네 원고는 오름이 완전히 관통했어. 우리에게 원고를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다!
문장 하나하나에 대부분의 책 한 권보다 많은 게 담겨 있어! 이 정도 질의 책을 한 권만 출간해도, 그때부터 독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책만 요구할 거야.
"네가 쓴 작품을 읽을 수 있는데, 독자들이 뭐하러 질이 떨어지는 책을 읽겠어, 계속계속?"
"다른 작가들도 널 본받겠지! 조금 덜 쓰지만 더 훌륭한 책을 쓸 거야......"
"넌 차모니아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바로 그 이유로 너 자신의 가장 끔찍한 적이기도 해!"
(P.58)
꿈꾸는 책들이 깨어났다! 연기 기둥이 몇 킬로미터나 솟아오르고, 무게를 잃은 종이와 타버린 생각들도 함께 솟구쳤다. 수많은 불꽃이 그 안에서 흩날렸고, 불꽃 하나하나가 타오르는 단어였다. 단어들은 별과 함께 춤추려고 높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마치 부흐하임의 검은 남자가 다시 부활해 집 한 채 한 채, 거리 하나하나, 구역 한 구데 한 군데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타닥거리며 타는 소리는 고통스럽게도 그림자 제왕이 웃음을 상기시켰다. 그도 부흐하임을 파괴하는 가장 크고 가장 끔찍한 화재에 휩싸여 불꽃을 튀기며 위로 올라갔다. 방화자이자 점화 불꽃이었던 그는 별이 되려고 위로 날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오름을 느꼈다. 오, 충실한 친구들이여, 오름은 단어들의 소용돌이로 내 머릿속을 채우더니, 심장이 몇 번 두근거리는 사이 여러분이 방금 읽은 이야기로 배열됐다. 나는 불타는 도시를 뒤로하고 출발해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앗다.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