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판타스틱 과학책장 (2020-03)
판타스틱 과학 책장
이하음,조진호,이정모,이명현 / 북바이북 / 348쪽
(2020. 2. 19. - 2. 22.)
작년말부터 '아이들에게 권장해줄 만한 재미있는 과학책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재미있는 책을 찾으려다 보니 과학책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 졌다.
우선 만화책과 과학책 소개하는 책들을 뒤져 보고 있다.
그중 오랫동안 많은 과학책들을 써온 유명한 저자들이 과학책을 선별해서 소개해주는 좋은 책을 하나 찾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 괴짜 과학자들의 이야기, 어른들이 읽을 만한 과학만화책들을 재미있게 소개해주고 있다.
꼭 읽어야 할 과학의 고전들에서 시작해서 고전들과 관련된 최근의 저작들 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앞으로 읽어볼 과학책 목록을 작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연선택설은 그다지 어려운 개념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 심지어 생물교시들도 오개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딱히 쉬운 개념도 아닌 것 같다.『종의 기원』은 재미없는 책이고 재미가 없으면 읽을 수 없다. 재미를 찾아서 조금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금 돌아가는 것이 나처럼 23년이 걸려서 한 권 읽는 것보다는 1704배쯤 낫다.
그렇다고 다짜고짜『다원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9)이나『찰스 다원 평전』(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2010) 같은 정통 평전을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들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된다. 일단 작고한 도서평론가 최성일이 쓴 양장본『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의 574~578쪽으로 시작하자. 그 다음에는 찰스 다원이 쓴『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와 만화『찰스 다원 : 그래픽 평전』(유진 번 글•사이먼 거 그림,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2014)을 추천한다.
평전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비글호 항해기를 다루고 있다. 항해기를 읽으면 비로소 다원을 사랑하게 된다.『찰스 다원의 비글호 항해기』가 최고다. 다원의 여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훔볼트를 알아야 한다. 훔볼트가 없었으면 다원도 없었다. 그리고 다원과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설을 발견한 알프레드 월레스의 탐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훔볼트의 대륙』(올리 굴케 지음, 최윤영 옮김, 2014)과『진화론 산책』(산 B.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살림Biz, 2012) 가운데 훔볼트와 그리고 월레스를 다룬 1~3장은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끝까지 읽어도 좋다.
최고의 만화책은『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제이 호슬러 글• 케빈 개년 외 그림, 김명남옮김, 궁리, 2013)다. 이 책이 10년만 일찍 나왔어도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다만 제대로 이해하려면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뭐는 그렇지 않겠는가. 장대익 교수의 해제가 붙어 있는『그래픽 종의 기원』(마이클 켈러 글• 니콜 레이저 풀러 그림, 이충호 옮김, 랜덤하우스고리아, 2010)도 좋다.
글로 된 책으로는 중학교 생물교사인 윤소영 선생님이 쓴 『종의 기원』(사계절, 2004)이 있다 윤소영 선생님은 다윈보다 다원의 진화론을 더 잘 설명한다. 다원 이후의 진화이론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다.
다원에서 최근에 이르는 진화이론을 논쟁적으로 살펴보기 를 원한다면『다윈의 식탁』(장대익 지음, 김영사:2008, 바다출판 사2014)이 최고다. 1859년 영국에서『종의 기원』이 나왔다면 2008년 한국에서는『다원의 식탁』이 나왔다. 다원 이후 150 년 동안의 진화론 발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외국 출판 사들이 왜 이 책의 판권을 사서 출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다 른 나라에는 이런 책 없다.
『종의 기원』안 읽어도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종의 기원』을 읽어야 할까. 위의 책들을 차례대로 읽었다면 힘들여서 재미없는『종의 기원』을 읽을 필요 는 없다. 그리고 아직 추천할 만한 번역본도 없다. 차라리 최신 진화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편이 낫다.
(P.21)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원소에 관한 종결자가 등장했다.『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2011)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더 이상 원소에 관한 책을 쓸 마음을 접었다. “이쑤시개를 하키스틱처럼 사용해 물령물령한 공들을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하자, 두 공이 닿는 순간 갑자기 한 공이 다른 공을 집어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공이 있던 자리에는 하나의 공이 홈집 하나 없이 흔들거 리고 있었다.” 머리말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원소 번호 80번인 수은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깨진 온도계에서 새어 나은 수은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수은의 영어 이름은 태양계 첫 번째 행성과 같은 머큐리다. 그런데 원소기호 'Hg'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스어로 물水을 뜻 하는 'hydr'와 은을 뜻하는 'argyros'가 합쳐진 말이란다.
이 책은 단순히 에피소드를 통해 원소를 설명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원소를 빙자하여 생물학에서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 전반을 소개한다.
(P.82)
다이아몬드의 논리는 명확하다. 문명 발달의 기초는 농업이며, 잉여생산물이 생기면 기술을 발달시킬 전문가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문자와 정치조직이 발달했다. 그런데 농업의 발달 정도를 결정한 것은 바로 환경이라는 것이다.『총.균.쇠』는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류사의 중요한 요소들을 한 권의 책 으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는 분명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P.92)
칼 세이건은『코스모스』에서 숱한 전설과 신화와 종교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것들이 좋든 싫든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온 배경이라는 자각을 하자고 말이다. 한때 인류에게 지혜를 선사한 것에 경의를 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우리는 과거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다. 현재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과거의 인식 체계 속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 칼 세이건 의 생각이다.
지금은 과학의 세계다. 과학적 인식론이 삶의 동력이 되어야 할 시기다. 과거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이자 지혜인 종교, 신화, 설화의 지혜로움에 경의를 표하지만 이제는 결별하자는 것 이다. 그들에 의해서 구축되었던 가치관, 도덕, 삶의 태도가 이제는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또 다른 변혁의 시대라는 것이다. 칼 세이건이『코스모스』에서 숱한 신화, 설화, 종교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이들과의 아름답지만 냉정한 이별을 위한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P.102)
『시간의 역사』는 결국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책장용 책이어야만 하는가. 좀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당연히 정통으로 현대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몇몇 천체물리학 마니아에게만 해당할 뿐,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먼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는 대중과학책을 통해서『시간의 역사』, 더 나아가서는 호킹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현정준이 옮긴『시간의 역사』(삼성출판사. 1990)는 현재 절판 상태다. 영문판은 여전하 공항서점 판매대에서도 구할 수 있다. 이런 책이 절판 상태여서 독자들이 구할 수 없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가 나와 있다. 솔직히 처음 호킹의 책을 접言는사람에게 나는『시간의 역사』보다는『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시간의 역사』와 달리 '벌레구명과 시간여행' 이리는 장을 하나 추가했고 개념과 현상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많은 그림을 보충했다. 가독성이 훨씬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시간의 역사』읽기의 첫 출발로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내용은 거의 같기 때문에『시간의 역사』를 따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읽은 후에는, 현정준이 옮기고 청림출판에서 펴낸『시간의 역사 2』(1995) 또는『쉽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2000) 읽기를 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두 책 모두 절판됐다. 사실 이 두 책은 같은 책이다. 제목을 달리 해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냈다.『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의 배경이 되는 숱한 에피소드를 다룬 책으로, 생생한 배경 자료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가 우주의 역사와 진화를 과학의 창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딱딱한 책이라면『쉽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나『시간의 역사2』는 그 배경이 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한 책이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그림 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의 가독성을 배가시길 수 있을 것이다. 이해도도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P.115)
토머스 s. 쿤이『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설명했듯이 과학도 시대의 산물이다. 새롭고도 탁월한 발견과 이론이 반드시 천재적인 과학자가 있어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뉴턴이 없었어도 만유인력의 이론은 나왔을 것 이고, 아인슈타인이 없었어도 상대성 이론은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과 동시대에 살던 이들 중에 그 이론을 자신이 먼저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여러 과학자들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특별한 인물이었던 이유가 있다. 바로 수많은 현상을 탁월하게 간결한 식으로 요약했다는 점이다. 물리학자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아름다운 공식 속에 모든 것을 담아냈다. 맥스웰도 마찬가지다. 패러데이나 가우스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전기와 자기를 해박하게 설명했지만, 맥스웰은 그들의 장황한 설명을 몇 개의 방정식으로 요약했다.
책도 마찬가지다.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다양한 양상을 이기적인 유전자의 활동으로 파악함으로써 멋지게 요약했다. 에드워트 월슨도『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생물학적 원리로 탁월하게 요약했다. 앞서 말한『과학 혁명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과학 발전의 양상을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로 탁월하게 요약했다. 이런 책들은 출간 당시에 화제가 될 뿐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는다.
화제의 책이 되기 위한 또 한 가지 조건은 시사성이다. 깊이 있게 잘 쓴 책이 시대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각각 2010년과 2014년에 큰 화제를 모았던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나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 그런 사례다.
사실『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40, 50대의 평은 다 비슷비슷했다. 그들이 대학 때 읽었던 온갖 사회과학서적들에 다 나온 이야기라고 말이다. 바꿔 말하면 그 책이 그 시대에 나왔다면 고만고만한 책들 중 하나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달라진 것은 시대 상황이다. 그 책들은 다시금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 불평등 문제가 회두로 제기되는 시대가 왔음을 말해준다.
다시『통섭』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그 번역서가 나온 시기는 우리 사회에 학문 간 융합이 화두로 떠오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번역서가 뒤늦게 7년 뒤에 나온 것이 오히려 시대 상황과 들어맞은 셈이었다.
이런 우연한 조합이 책에 행운이 되곤 하는 반면, '다윈 탄생 200주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처럼 기념행사에 맞추어낸 책들은 기대한 효과를 그다지 못 볼 때가 많다. 비슷한 부류의 책이 너무 많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니 출판이 요지경일 수밖에.
(P.189)
이제는 어른을 위한 과학만화책으로 돌아가보자. 『로지코믹스』(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글 •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외 그림, 전대호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는 과학교양 부문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과학만화책이다.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그의 생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칸토어,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폰 노이만, 괴델 등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들의 이야기도 주인공과 역여서 줄줄이 등장한다. 300쪽이 넘는 꽤 묵직한 만화책이지만 이 많은 이론을 소상히 담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면을 큼지막하게 그림으로 채우기 때문에 내용을 많이 담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단편적인 소개에 그친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불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수학과 논리학을 꽤 안다는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한 내용일 것이고, 반대로 관심과 소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머리 아프게 하는, 딱 그 정도의 난이도다
(P.269)
고전 중력 이론에 대한 여러 책들이 있지만 마리 비구뢰의『과학 안단테』(장 마리 비구뢰 지음, 림Books, 2008)를 추천하고 싶다. 고대 세계관부터 뉴턴의 만유인력까지 범위를 좁혀서 밀도 있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인물 이야기와 당시 사회적 상황이 적절하게 담겨 있으며, 스토리성이 대단히 풍부하다. 다른 책과 비교했을 때 내용이 대단히 세밀하다는 점도 인상 깊다.
게다가 수식도 전혀 없다. 고전 중력 연구는 수식을 거의 쓰지 않고, 직관과 상상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지 않은가. 이때는 정말 과학의 에덴동산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과학자들은 별을 바라봤고, 공상을 했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냈다. 중력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 중에 하나는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엄연한 현상을 엄청나게 추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추상적인 시공간을 머 릿속으로 많이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책과 맥락을 같이 고전 중력에 관한 책 세 권을 더 소개 한다. 사이먼 싱의『빅뱅 - 우주의 기원』은 빅뱅 세계관에 이르는 고전 과학의 역사를 서술한 수작이다. 만일 이런 책들을 읽고 욕심이 생긴다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과학의 탄생』(이영기 을김, 동아시아, 2005)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경고하건대, 이 책은 분량으로나 내용의 난이도로나 지독해서 체력과 인내심 을 공고히 하고 시작하는 것이 심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책으로는 필자가 쓴『어메이징 그래비티』가 있다. 이 책은 만화다.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