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2
아케이도 준 / 이선희 / 인풀루엔셜
카멜 다우드 / 문예출판사 / 416쪽
(2019. 8. 16.)
자기 손을 떠나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더구나 처지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지는 법이다. 도키에디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은행은 원래 그런 곳이다.
한자와의 귀에 조만간 금융청 감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정보가 들어온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P.23)
지금 가장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한자와 본인이다. 동네 주부들과 테니스도 치고 점심도 먹으러 다니는 하나가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하나는 “당신은 자기가 좋아서 일하는 거잖아!”라고 되받아친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자와 책임이고, 그로 인해 기수을 내팽개치는 일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P.49)
평생 편하게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은행 건물을 나와 교바시의 주상복합 건물 3층에 있는 회사로 들어가면서 곤도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뜻일까? 그런 뜻이라면 물론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병에 걸려도 은행에서는 이렇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먹고시는 것의 대가로 입행 당시에 가졌던 꿈과 희망 그리고 자존심은 어딘기에 던져버려야 했다.
인생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먹고살 걱정은 없다'는 보증도 바야흐로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곤도는 은행에 소속된 채 '조건부'로 다미야전기에 파견 나은 신세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도 앞으로 2년이 있으면 끊어진다. 그 시점에는 은행을 그만두고 다미야전기에 정식으로 전직해야 한다.
다미야전기라는 작은 회사의 일원이 되어서 병이 재발해도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을까? 다미야가 그것을 허락한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다미야는 은행에서 파견 나온 곤도의 말과 행동을 항상 냉소적으로 쳐다보았다.
곤도에게는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곤도의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월급쟁이 출신으로, 그들에게는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노후를 지낼 만큼의 여유밖에 없다. 곤도는 자기 부부가 멀리 떨어진 외로운 바다에서 어린 아이들을 껴안은 채 고무보트를 타고 표류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고무보트에는 구멍이 나 있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른다
(P.57)
은행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일 위를 달리는 롤러코스터의 승객이다. 처음에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지만 점점 길이 험해지면서 이윽고 급류 위를 건너거나 깎아지른 절벽을 질주한다. 말 그대로 높은 산과 험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긴 여행인 것이다.
입행 4년치쯤에 나타나는 최초의 커브 길에서 탈락한 자들은 이듬해에 동기들보다 기본급을 적게 받고, 과장대리로 승진하는 레이스에서도 뒤처지게 된다.
출세하는 사람과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미 20대에 정해지고, 마흔이 넘으면 롤러코스터의 여기저기에 빈자리가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대량 채용 시대였던 거품 경제 시대에 입행한 행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량 채용인데다 은행의 합병으로 인해 윗자리는 더욱 줄어들어서, 아직 를러코스터의 난간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탑승팀과 탈락팀 사이에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메우기 힘든 틈이 벌어진다.
(P.112)
“나도 사장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 그때마다 사장이 뭐랬는지 알아?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더군. 나는 이 회시에서 20년이나 있었어. 20년째 계속 과장으로 말이야. 한마디로 말해 나는 기둥에 박한 못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그 못에 걸리는 달력이 매년 바뀌어도 나는 바뀌지 않아. 녹이 슬어 서 뽑힐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그런 인생을 상상이나 할수 있어?”
“인생은 바꿀 수 있습니다!”
노다의 힘없는 눈동자 속에서 작은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곤도는 그 눈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지요. 지금 당신은 위축된 월급쟁이 근성을 그대로 드러낸, 한심한 아저씨에 불과합니다. '노'에 비해 '예스'란 말은 몇 배나 간단하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 월급쟁이가 '예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일은 무미건조해 지는 겁니다!”
곤도는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른 뜨거운 덩어리를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옛날,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희몸에 받고 신설 지점의 설립준비위원으로 발탁되었다. 아키하바라 동부 지점에 발령을 받았을 때, 온몸을 휘감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에 경험한 지옥 같은 날들과 너무나 대조적인-어느 의미에서 는 순수했던 -감정으로써 .
아무리 기를 써도, 아무리 이를 악물고 발버등쳐도 실적이 오 르지 않았다. 자신이 담당한 구역을 하루도 빠짐없이, 말 그대로 신발 바닥이 닳을 만큼 돌아다니는 사이에 미음의 소중한 부분 까지 닳아 없어진 나날들.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열리는 실적 회의에서, 두 눈에 부을 켜고 실적을 올리려는 지점장에 게 욕설을 들으면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을 때, 자신은 무슨 말홀 들어도 “네”라고빆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좋아했던 일, 잘할 수 있었던 일은 잿빛 모래 산으로 변하고, 어느새 위에서 시 키는 대로 삽으로 모래를 퍼서 다시 메우는• • •••• 그런 허무한 들이 반복되었다.
'일은 대충하고 여가를 즐기며 편안하게 살자.'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하 루의 절반이 넘는다. 따라서 일을 포기한디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을 포기한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소중한 일을 어떻게 포기言는가! 아무 생각 없이 적당히 하는 일만큼 시시한 것은 없
다. 그렇게 시시한 것에 소중한 인생을 바쳐야 하는가.
어쨌든 이 건은•••••• 곤도는 현실로 돌아와서 펼쳐진 원장의 페이지를 볼펜으로 톡 톡 두들겼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조사할 생각입니다. 사장님께 서 뭐라고 하든 말이죠. 만약 돌려받을 예정이 없다면 라파예트 라는 회시에 빌려준 3천만 엔을 특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특손은 특별 손실을 말한다. “세무상으론 손실로 처리할 수 없어 . " 곤도가 노다의 반론-을 일축했다.
'그건 세법상의 얘기지요. 나는 우리 회사의 회계 얘기를 하는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