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금이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가 청소년판으로 출간되었다.
표지가 다르고 페이지수가 다른 거 말고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으니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표지를 선택해서 읽으시면 되겠다. 중요한 건, 어느 표지든 꼭 '읽으시면' 좋겠다는 것.
청소년판 <슬픔의 틈새>는 총 456쪽이라 꽤 긴 편인지만책을 받았을 때 두꺼워서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내용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몰입감 있어서 일단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는 건 쉽다.
이 소설을 읽고 내가 갖게 된 첫 감상은 반성이었다.
나는 우리 역사에 대해, 우리 민족의 아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구나.
소설은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초청으로 '화태'라는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단옥'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데, '화태'라는 지명이 나오자마자 지명을 검색해봐야 했을 정도로 사전 지식이 전무했다. 사할린 동포, 사할린 동포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사할린이 러시아에 속해 있는 지역이라고만 알고 있었고 러시아 지역이니까 막연히 연해주에 우리 민족이 많이 살게 된 것과 비슷하겠거니 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사할린 섬(당시 화태)를 점령하고 있었고 화태의 광산에서 일할 노동자를 조선에서 차출했으며, 일본은 조선인 광산 노동자의 정착을 꾀하려 가족을 초청할 수 있게 했고 그때 사할린으로 넘어간 조선인들이 역사적 격변을 지나며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게 된 비극적 사건을 나는 몰랐다.
실제 인물은 아니었겠지만 사할린 동포의 삶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단옥의 삶을 읽으며 너무 안타까웠고 미안했고 슬펐다.
1943년부터 2025년까지의 긴 시간을 소설은 압축해서 그려내고 있는데 단옥의 이름이 변해가는 것이 사할린 동포들의 삶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카고, 다시 주단옥, 그 다음 올가 송...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고 있을 때는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살라 강요했으면서, 전쟁에서 패하자 일본인만 본토로 귀국시키고 조선인은 버렸고, 남은 조선인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조선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우느라 타지의 민족을 나몰라라 했고 그 사이 화태 지역은 사할린이 되어 러시아인이 될 것을 종용받았다.
그 역사의 굴곡 속에 사람들이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모두가 기구하고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이름을 바꾸고 학교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개인적인 선택이 시대의 흐름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런 선택들이 누구는 북한 국적을 갖게 하고 누구는 러시아 국적을 갖게 하고, 가족과 생이별 하게 하고, 사회에서 차별 받게 되고, 나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가족이 생기게 되고, 그 가족을 그리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게 되고.
정말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련과 아픔과 절망과 분노가 있었겠지만, 이 소설이 정말 감동적이고 뭉클했던 건 그들의 삶이 시련과 아픔과 절망과 분노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원망했고, 미워하면서 절절히 사랑했(348쪽)'던 그들이 끝끝내 민족적 정체성과 전통과 문화를 지키면서도 사회에서 배척되지 않고 그 사회에 동화되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내고.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새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443쪽)'에는 존경심이 우러났다.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믿을 수 없는 지위와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그러한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현재를 가꾸며 더 큰 미래로 도약해내는 민족성.
단옥의 삶에서 우리의 위대한 민족성이 읽혔다.
<슬픔의 틈새>는 이금이 작가님의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소설이다.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건너간 이민자의 삶을 그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읽었지만 먼저 출간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아직 못 봤는데 얼마나 안타깝고 슬플까를 생각하면 차마 못 읽겠지만 <슬픔의 틈새>나 <알로하, 나의 엄마들>처럼 슬픔에 매몰되지 않은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역시 궁금하다.
이금이 작가님은 뜻깊은 청소년 소설 작품들을 많이 쓰시지만
<슬픔의 틈새> 같은 역사 소설도 정말 훌륭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