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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어 강사이다.
한국어 교육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학생들의 국적을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오랜 경험상 국적 때문에 간혹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는 한다.
대체로는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잠깐의 논쟁이지만
강사인 내 입장에서도 교재에 한국 전통 문화가 나올 땐 중국 학생들과 대립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교재에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이 나올 땐 일본 학생들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해서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 경우에도 학생들이 대놓고 나에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거나 항의를 한 적은 별로 없지만,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있으니 최대한 가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나라의 외교방향이나 정책 말고 진짜 그들의 생각이 어떠한가이다. 특히나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일본 학생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소리내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여, 정말로 일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생각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 역사로 번져,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 역사에 관계된 일본의 과거 행적과 그것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한일 관계에 대한 고민까지 확대시킨 일본 학생들이 쓴 책이다.
일본 학생들이 이 책을 쓴 학생들과 같겠구나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한일 문제를 바로보고자 하는 일본인을 대하는 다른 일본인들의 태도,
그리고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통해
그들의 반한 감정의 구체적 모습을 조금은 알게 됐다.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일본인이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어서 큰 관심이 없는 것인데, 그 '관심 없음' 역시 갑이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feat.<선량한 차별주의자>)
187쪽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회 문제나 범죄를 이야기할 때, 그 잘못의 당사자가 아닌 개개인도 왜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느냐 억울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로 '연루'라는 개념을 설명한 것도 매우 기억해둘 만했다. 꼭 한일 관계뿐 아니라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차별 등 모든 문제에 해당된다.
189~190쪽과거의 잘못은 현대인이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그 잘못에서 파생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풍화 과정에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중략)...
그렇게 나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과거의 역사와 내가 무관계하지 않다는 '연루' 의식을 바탕에 깔고,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자세로 가해 역사를 마주하기로 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사실과 그 이전부터 쌓여온 영토 문제 등을 잘 모르는 일본인을 위해 쉽고 상세히 설명해 놓아서, 한국인인 나 역시도 편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사실을 잘 모르는 채 무조건 외면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실을 잘 모르는 채 무조건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니.
하지만 책을 다 읽고도 아쉬움은 있다.
아니, 이 좋은 책을 한국 사람이 감동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
일본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야지.
일본에서 더 많이많이 읽히면 좋겠다.
#우리가모르는건슬픔이됩니다 #한일관계 #해피북스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