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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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무진 작가님의 <인 더 백>을 읽었다.
<인 더 백>은 백두산이 폭발하고 식인 바이러스가 퍼진 대재난의 아비규환이 배경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배낭에 숨겨 메고 본가가 있는 대구로 향하는 아버지의 힘겨운 여정.
부산행이 떠오르긴 하는데 부산행은 공포의 대상이 사고를 할 수 없는 무지성 무지능의 좀비인데 <인더백>의 경우 멀쩡히(?) 생각하고 살아 있는 인간이라 더 무섭다.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이 바이러스 감염자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것부터가 공포 아닌가.
첫 장면은 주인공 동민의 가족이 동호대교를 건너 도망을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예정 시간보다 일찍 미사일이 떨어져 아내가 죽는다. 남은 건 아들! 아들을 살려야 한다!
자식의 안전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위기 상황에서 나와 아이 둘만 남았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책과 같은 재난 상황 아니어도, 요새는 묻지마 폭행이나 보복 운전 같은 대처하기 어려운 일도 많으니. 뉴스나 영화를 보다가 종종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약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둘 다 살 수 없다면, 내가 죽는 게 맞는 거 같아. 당신은 꼭 살아남아 하라를 지켜. "
책에서도 같은 장면이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아내의 심정이 너무도 이해가 돼서 눈물 펑펑.
(앞에서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남편은 '왜 또 저래'라는 표정ㅋㅋㅋㅋㅋ)
여성과 아이, 두 약자가 함께 있는 것보다 남성인 아빠가 있는 것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남편이 남자라는 이유로, 나는 쉽게 죽음을 선택하고 남편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떠맡기는구나.
내 자식을 지켜내야 하는 무게감. 아버지라는, 가장이라는 역할의 사명감. 동민이 메고 있는 가방은 그 무거운 사명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눈물로 시작한 <인더백>
자칫하면 식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에게 잡아 먹힐 수 있는 위기 속에서 어떻게 무사히 아이를 지킬 것인지. 도무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연속되어 정말 심장 졸이며 읽었는데.
마지막 결말이....
엉?
이게 뭐지?
내가 지금까지 뭘 읽은 거지?
정말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앞장을 펼치게 되는 마성의 소설!
연속 두 번 읽었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면 새롭게 보이는 곳곳의 복선들.
와~~~~~~~ 작가님 美쳤!!!!!
<인더백>의 반전이 정말 놀라웠던 건... '반전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적정한 선'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근데 그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렇게 세세한 내용은 생략해도 되겠다 여겨서 넘어갔던 부분이 결과적으로는 반전의 핵심.
'이상하게'라는 말이 오해를 부를까봐 자세히 설명하자면
1. 아이가 어쩜 저렇게 얌전할 수가 있지? 이상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절대 가방 안에서 그렇게 오래 버티고 있기가 힘들 텐데 이상하다 생각했단 얘기. 근데 또 바꿔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극한으로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패스
2. 군인들의 태도가 너무한 거 아닌가?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나라 국민인데 동민의 말을 너무 안 믿어주는 거 아닌가 뭐 저렇게까지 막 함부로 대하나? 그리고 애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했는데... 전쟁 중의 군인들이 민간인을 대한 태도를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게 됐고.
근데 그게 반전...^^;;
의심과 인정의 선을 적정하게 설정하셔서 반전이 더 놀라웠던 것 같다.
(다들 식스센스를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난 오히려 식스센스는 보면서 반전의 설정을 눈치챘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그 주인공 아이 외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없어서...
근데 <인더백>은 식스센스와는 또 다른 설정이어서 완전 뒤통수 맞은 기분.
그리고 이 소설은 그저 애타는 부정父情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한강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피난.... 다리에 포격.....
남한과 북한, 정부군과 반군,
너의 선은 무엇이냐 질문하고 편을 가르는 이들.
익숙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연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인류 보편적인 감정에도 특별히 K 감정 필터가 덧씌워진다.ㅠㅜ
동민이 '그렇게까지 해서(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표현)' 아들을 지킨 건,
그 임무가 힘겹고 무겁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그의 삶의 동기가 되었기 때문.
아마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동민은 금방 자기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삼체에서 윈텐밍이 인간은 한 명도 없는 우주에서 기약없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청신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삼체 엄청 우려먹고 있음 ㅋㅋㅋㅋ)
인간은 목적 없이 살 수 없다.
그 말은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에서라도 목적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동민의 가방 안에는 '삶의 이유'가 들어 있다.
그것이 각자의 선.
당신의 선은 무엇인가.
<인더백>은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373쪽 세상이 이토록 지저분한 것은 각자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 만약 누군가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리라.
선과 악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그저 각자 소중한 무엇만 존재할 뿐. 아이가 그에겐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세상에 대고 대답을 물어도 세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했다. 아무리 원망해도 합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88쪽 “아나카, 옳고 그름은 말이야. 지킬 게 있는 사람에게는 묻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줄 알아? 인간의 선은 각자 다 다르니까. 선을 묻는 네 질문에 내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