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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님의 새 책 <청혼>
우주에 사는 남자와 지구에 사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배명훈 작가님의 전작인 <화성과 나>의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이나 「 행성 탈출 속도」 같은 작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소설인가 했는데, 11년 만에 다시 나온 개정판이라고 한다.
<화성과 나>도 정말 기발한 발상이라 느꼈는데, '우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하셨다니!
소설은 우주에서 군복무 중인 주인공이 지구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이야기의 배경을 파악하기가 좀 어려웠다. 계속 읽다 보면 조금씩 상황이 이해가 된다.
남자가 목성 근처에서 복무를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구에 전해지는 어떤 예언서에 우주에서 외계 함대가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그래서 지구인들은 우주 함대를 만들어 외계 함대의 침략에 대비했는데, 그 예언서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나타났다. 그 사이 궤도연합군의 위세가 점점 커지니까 궤도연합군 사령관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한 지구의 지표면연합이 감찰군을 보내 궤도연합군을 감찰하고 통제한다. 그런데 이들을 공격하는 적은 대체 누구인지,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공격하고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차원의 문(파멸의 신전)'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궤도연합군 사령관을 표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 같다.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은 정말 반란을 계획하고 있을까?
최근 <삼체>를 읽은 지 얼마 안 돼서 외계 함대의 침략, 우주 전쟁 등의 상황이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삼체가 외계인의 침공에 대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라면 <청혼>은 '이쪽'과 '저쪽'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우주인과 지구인. 엄청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연인은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는 목성 근처의 함대에 주둔하는 궤도연합군 소속. 우주 출신이다. 여자 친구는 지구 출신. 이들이 만나려면 왕복 340~360시간이 걸린다.
(대체 어떻게 연애를 시작한 건지? ㅋㅋ)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나도” 하고 네가 나에게 대답해주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사랑한다는 너의 말에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그 말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또다시 17분 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갑갑함이야. 35~36p.
문제의 근원은 거리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이름의 물리적 장벽 말이야. 39p.
사랑의 정도와 상관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이름의 물리적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물리적 거리는 곧 시간과도 이어지는 거라 진심도 바로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 거리와 시간도 딛고, 중력도 딛고 여자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었으나 전쟁이 의외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이들을 노리는 적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을 하고 사라지는지.
궤도연합군 데 나다 장군은 반란을 일으킬 의도가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일 뿐. 그의 목적은 적의 함대를 공격하는 것. 그리고 파멸의 신전을 밝히는 것.
나는 데 나다 장군이 너무 대쪽같은 사람이어서 그를 경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데 나다 장군을 공격하는 적도 사실은 적이 아니라 미래에서 시간의 문을 넘어 온 지구 소속이라고...
데 나다 장군은 그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현재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존엄과 결백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지.
데 나다 장군은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려던 계획을 알고 있어서 그걸 하게 해주려는 거였지만 전투 이후 사건 보고와 처리가 사실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을 본 주인공은 다른 결정을 한다. 감찰군 사령관은 주인공에게 계속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택을 강요했다. 주인공의 선택은 데 나다 장군. 주인공의 선택 역시 데 나다 장군의 선택과 같은 이유일 것 같다.
소설의 제목이 '청혼'이라 우주와 지구의 물리적 여건을 뛰어 넘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청혼은 '하지 못한'이 생략된 청혼이라는 슬픈 이야기.
마지막 문장이 아련하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 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153~154p.
#배명훈 #배명훈_청혼 #북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