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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식이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군 폭행 사망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서였다.
아들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이렇게 무서워서 내 아들 군대 보낼 수 있겠느냐는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띈 글 하나.
"모두가 다 자기 자식이 피해자 될 거라는 걱정만 하네?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그렇구나.
그때부터 양쪽에 균형잡힌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벌어진다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건 꼭 군대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시로야기 슈고의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는 그런 마음으로 읽긴 했지만
균형잡힌, 객관적 시각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나는 이미 (외부적으로는) 경미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사건들의 경험자가 되어 있었으므로.
아이가 내 품에서 점차 활동 반경을 넓히며 벗어나기 시작하고,
'학교'라는 사회 집단 안에 들어갔을 때부터 피해자가 되느냐 가해자가 되느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마바 고하루와 아카기 마나가 등장한다. 두 아이는 친한 친구였는데 사이가 멀어지며 한 명은 왕따 가해자, 한 명은 왕따 피해자가 된다.
만화 형식으로 가해자는 초록색, 피해자는 분홍색으로 표시되어 양쪽의 입장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 책은 왕따 사건에 예방법도 대처 방안을 알려주는 건 아니다.
다만 양쪽의 입장과 상황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한다.
내가 이런 입장이면 어떨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나는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가 피해자라면 나는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나는 이미 경험자다.
내 경험에 비추어서도 정말 많이 생각했다.
정답은 없다.
그 어떤 사건도 똑같지 않으며 거기에 얽혀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그 누구도 같지 않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을 이야기할 때 논외였던 중요한 사람도 있다.
바로 '방관자'
내가(내 자식이) 피해자가 아니니까
내가(내 자식이) 가해자가 아니니까
남 얘기로 치부하며 쉽게 떠들고 퍼트리는 사람들.
그들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일이 터지면 다시 우왕좌왕하겠지만 이건 꼭 기억하려 한다.
사과는 가해자의 의무이지만
용서는 피해자의 선택이지 가해자의 권리가 아니다.
#내딸이왕따가해자입니다 #학폭 #학교폭력 #학교왕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