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은 이유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인터뷰 때문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침묵'에 출연하기 위해 미국행, 대만(?)행을 감행한 한 연극배우 이야기였다.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하염없이 도전하는 한 남자에게 감복해 무슨 이야기이길래 궁금해졌다.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금세 극장에서 사라져버려 영화는 보지 못했고, 그 연극배우 역시 이 책에 감명해서라기에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일래.
지금 보니 조금 이 남자 이야기가 주인공 로드리고와 겹쳐지는 면이 있다. 전혀 될 수 없는 일에 가까운데도 도전하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기독교도도 천주교도도 아니다. 종교는 무교에 가깝고, 그저 이 세계는 어디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러 어디로 흘러가나 궁금한 점이 있고, 왜 그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믿을까,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물질이 끝나면 이 모든 정신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죽음이 있었을 때 실제로 그 영혼을 보았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우연이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인지도 모르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모든 아픔을 달래주며 함께하는 어떤 선
내가 바라보는 한 절대 눈길을 돌리지 않는 어떤 선
이 있다고
이 미천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죽어도 매미는 울고 파리는 나는 이 세계의 이 미천함과 함께 하는 어떤 눈길…
그러다보면 돌아가는 의문은
바퀴벌레다. 내가 때로 죽이는 바퀴벌레
그 바퀴벌레에게는 그런 눈길이 없었던 걸까
정말 인간만 뭔가 다른 걸까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그때 그는 성화에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내려놓았다. 다섯 개의 발가락이 사랑하는 분의 얼굴 바로 위를 덮었다. 이 격렬한 기쁨의 감정을 기치지로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여기서는 밤과 고독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페레이라 신부처럼 붙잡히게 되는 걸까?"
라고 묻자 가르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런 일보다는 등을 기어가고 있는 이한테 더 관심이 있다네."
일본에 오고 나서 그는 언제나 명랑했습니다. 어쩌면 명랑한 체 하면서 저와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붙잡힌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묘한 것이어서, 타인은 어쨌든 간에 자기만은 어떤 위험에서도 모면될 수 있다고 마음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먼 곳을 바라보며 그곳에만은 희미한 태양이 비치고 있을 언덕을 상상할 때처럼, 자신이 일본인들에게 체포당하는 순간이나 그 모습은 전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는 비록 움막에 있습니다만 언제까지나 안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왠지 모르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 P55
이 아이도 언젠가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 어두운 바다에 접한 가난하고 좁은 땅에서 소나 말처럼 일하고, 소나 말처럼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는 일은 쉽지만, 비참한 것이나 부패한 것들을 위해 죽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저는 그날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 P60
그것은 바로 제가 유용한 존재라는 희열의 감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전혀 알 수 없는 이 지구 끝의 나라에서 저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 P71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제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듣고 흘려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의 한탄이 어째서 예리한 바늘이 되어 제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인지요?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 P85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성인전(聖人傳)에 쓰인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 P93
다만 저는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다 마침내 죽은 오늘도 여전히 바다는 어둡고 단조롭기만 한 소리를 내면서 철썩이고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비에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 P94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P106
저는 사제가 되고 나서도 이 말의 참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수증기 속을 기치지로와 함께 발을 질질 끌고 걸으면서 저는 이 중요한 성경구절을 제 자신에게 견주어 가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마음에서 그리스도는 은 30냥 때문에 자신을 팔아넘긴 사람에게 가라는 말을 던졌을까. 노여움과 증오 때문인가, 아니면 사랑에서 나온 말인가.‘ 분노 때문이라면 그때 그리스도는 세계 모든 인간 중에서 이 남자의 구원만은 제외해버렸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분노의 말을 정면으로 받은 유다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한 인간을 영원한 죄악으로 떨어뜨린 채 내버려 두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 P117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용렬한 자, 그래서 강한 자는 이와 같이 박해받는 시대에도 신앙 때문에 불에 태워지고 바다에 던져져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쪽이냐?‘ - P122
그는 이 사람들에게 오두막집을 얻어 쓰고 이 농군 옷을 빌리고 음식을 받아먹고 살아왔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그들에게 뭔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위와 죽음 이외에는 봉사할 것을 한 가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128
"정말 이 세상은 고통과 질병뿐이에요. 천국에는 그런 것은 없다지요, 신부님?"
천국이란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신부는 입을 다물었다. 이 농민은 교리를 배우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국이란 심한 세금도 교역도 없는 별세계로만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꿈을 잔혹하게 무너뜨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 P130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 P136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P177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다녔던 것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은 창녀나 가버나움의 헐루병 여인처럼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들이었다.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 P181
아까와 마찬가지로 매미가 물기 없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울고 있다. 바람은 잠잠하다. 파리 한 마리가 여전히 날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얼굴 주위를 돌고 있다. 겉으로는 조금도 달라지 게 없었다. 한 인간이 죽었다는 사실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 P185
‘내가 죽임을 당한 뒤에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파리는 졸음을 재촉하는 날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것인가.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P186
그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던 것인데, 사실은 일본인 신도들이 자기 때문에 잇달아 죽어 갔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위란 오늘까지 교리에서 배웠던 것처럼, 이것이 옳고 이것이 나쁘고 이것이 선하고 이것이 악하다는 식으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P208
‘나는 저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끌려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연민은 결코 행위가 아니었다. 사랑도 아니었다. 연민은 정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신학교의 딱딱한 의자에서 이미 훨씬 전부터 배웠지만, 그것은 책 속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 P212
그렇다. 인간들을 위해 유익하게 소용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단 한가지 염원이며 꿈이다. 신부들의 고독이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무익할 때다. - P224
"형식으로만 밟으면 되는 거요."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