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훈'이란 사람을 처음 알게된건 몇년전 [한겨레21]의 인터뷰에서 였다. 당시 김규향과 최보은이 한 주에 한명씩 질펀한 대담을 나누는 '쾌도난담'이란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손님으로 초대된 김훈을 보았다. 그 인터뷰의 제목자체은 위악인가, 진심인가였다. 제목대로, 인터뷰에서 김훈이 쏟아낸 언어는 그 진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편향적인 내용이었다. 결구 김훈은 그 인터뷰에 대한 [시사저널] 기자들의 반발에 당시 맡고 있던 [시사저널] 편집장을 사퇴했다. 그게 나와 김훈의 첫 대면이었다.
기자로 잔뼈가 통뼈가 된 김훈은 어느날 또 사고를 친다. 데스크나 볼 지긋한 나이에 경찰출입기자로 한겨레에 들어간 것이다. 이전의 전력 때문인지 말들이 있긴 했지만, 김훈은 그럭저럭 기자생활을 했고, 나도 한겨레 지면을 통해 그의 글을 볼 수 있었다.
한겨레를 통해 본 김훈의 글은, 지난 번 '위악인가 진심인가'라는 인터뷰 제목만큼 김훈을 더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인터뷰에서 쏟아내었던 편향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과는 전혀다른, 인간에 대한, 일상에 대한, 민중에 대한 너무나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초기의 한겨레가 말도 안되는 민중주의를 설파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책은, 그런 김훈의 모습을 온전히 담고 있다. 문학담당기자로 출발해 깔끔하고 깊이있는 문체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필력을 선보이던 김훈의 속내. 소설에선 또렷히 접할 수 없었던 김훈의 모습이 이 책에선 손에 잡힐 듯 말 듯한다. 여전히 잡힐 듯 말 듯이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이지만, 남성우월주의라기 보다는 여성을 숭배하는 김훈이며 이런저런 거대 담론과 이론을 모두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지만,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김훈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든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사람인 김훈.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