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한 이후 (사실 그 이전부터 제기된 내용이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설득력을 얻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몰락을 등치시키지 않으려는, 사회주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합리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런 주장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여느 책처럼, 소련과 동유럽의 실상을 폭로하는 식의 내용은 아니다. 대충 책 구조를 살펴 보면, 마르크스의 이론-특히 이윤율과 관련된-을 간략히 살펴보고,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로자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 등-에 이르려 마르크스의 이론이 어떻게 수정, 보완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양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 각국에서 있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양상,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 "타락"하게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1910년 이후 현재까지의 국제적인 정치경제학적 상황과 더불어 경제사상의 흥망성쇠를 조망하면서, 그 속에서도 여전히 유의미성을 획득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따라서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기본적인 경제지식은 물론이며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 경제사상사에 대한 소양, 세계사에 대한 상식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이 책을 온전히 소화하는데 어려울 정도다.

애초 마르크스의 학문적 결과-곧 자본론-는 자본주의를 분석한 내용에 다름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사망선고서, 노동계급 해방의 예언서, 사회주의 건설의 지침서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마르크스를 교주로 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종교의 신도가 되어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마르크스의 옳음(그들이 해석한 마르크스의 예언)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혁명이후 사회주의 국가는 곧 반동성을 드러냈으며, 서구와의 체제경쟁에 나서게 되면서 이 반동성은 더욱 심화되었고,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마르크스를 왜곡하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서구 나름대로 체제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획득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맞서는 자본주의의 경제이론들이 나타났다. 특히, 세계 대공황의 돌파구를 제시한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스태그플래이션이 나타나기 까지 지배적인 자본주의의 경제학이 되었으며 지속적인 성장, 안정적인 고용을 과시하며 사회주의 국가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 경제학은 자유주의 경제학-이른바 통화주의-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통화주의는 세계국가를 급속히 보수화시켰으며 이후 공급중시경제학 등 또 다른 다양한 경제학파가 나타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전학파라 불리우는 정치경제학을 시작으로 케인즈주의, 통화주의, 공급중시경제학, 합리적 기대학파, 신고전파 종합 등 많은 경제학파가 존재했지만, 이 책은 마르크스 만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자본주의를 분석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물론 몇가지 오류가 있긴 하다고 인정은 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쳐쓰면서 완전무결한 것처럼 가장했고, 자본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를 온전히 평가하기 보다는 폄하하기 일쑤였고, 마르크스의 혜안을 읽어내지 못했다는게 저자인 메그나드 데사이의 주장이다.

사실 책을 읽고 나서 머리가 많이 아팠다. 당연히 뭔 말인지 잘 몰라서 였는데...어쨌든 데사이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있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운명을 어떻게 서술했고 그가 결과적으로 내놓은 분석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장 정확하게 인지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현대 경제학이 의식적으로 마르크스를 밀쳐내며 정치경제가 아닌 경제만으로 자립하려는 모습은 최근의 세계화 경향을 비롯해 많은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 책은 나를 굉장히 부끄럽게 한 책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경제학적 지식의 기본을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전공으로 공부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무암처럼,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내 지식의 구멍을 마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또한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이 이렇게 부족한가라는 자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전공지식을 더욱 다지는 한편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끊이지 않고 습득해야 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