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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어권 신문에서 2030 남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는(아직도 그러한가?) 이준석을 한국의 젊은 극우 정치인으로 기술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해외 언론이 한국의 정치인에 대해 어떤 라벨을 붙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살짝 떨어져서 이준석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준석은 여자, 장애인, 노인, 즉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아마 이준석이 서구권 국가의 정치인이었다면 이민자들과도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준석은 이런 계층의 사람들과 관련된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예컨대, 이준석은 노인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준석의 제안은 지하철 공사의 적자 누적 문제에 대한 정책적 접근일 수 있고, 그런 한에서 나는 이준석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준석은 그 정책 발표 말미에 의도인지 실수인지, "무임승차한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내리는 역은 경마장 역이다" 라는 말을 첨가한다. 그걸 보고 나는 이준석을 한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2030 남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는 정치인은 극우 포퓰리스트이다. 그는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하여 거기서 이득을 취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적인 차원을 잠시 떠나보자. 여자, 노인, 장애인과 싸우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미학적으로 그 사람은 어글리하다. 추하다. 이러한 미학적 기준을 자의적이라 비난할 것인가? 그러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월드 시리즈에서 일본 출신의 엘에이 다저스 선수 오타니와 야마모토는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특히 야마모토는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팀을 위해 헌신했다. 이런 선수에 대해 사람들은, 멋지다, 존경스럽다는 감정을 갖는다. 물론 그런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보, 다치면 자기만 손해인데... ㅉㅉㅉ. 즉 '자기 손해" 일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야마모토는 멋진 사람이 아니다. 비슷한 계열로, 자신의 이익을 해친다고 보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묵과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연세대의 몇몇 학생들의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예들에서 내가 느끼게 되는 감정의 주소를 정확히 찾을 수 없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미학적 감정에 속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요컨대, 그 연세대 학생은 추하다. 이런 예들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절대적인 것까지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자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자의적인 감정으로 치부될 수 있을 때 인간이란 종은 다른 역사를 살고 있을 것이다.)


사회는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좋게 보지 않는다. 동양 전통에서라면 전자는 군자로, 후자는 소인으로 불렸다. 소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부정적인 모든 것. 짜증내고, 화내고, 안절부절하고 등등. 이는 무능의 징표이다. 소인의 무능은 자기 콘텐츠를 생성함에 있어서의 무능이다. 그러므로 소인은 부화뇌동한다. 남들 하는 것을 따라한다.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정치인을 희화화하고 그것을 놀이 대상으로 삼는 것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 재미는 또래 집단의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확인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네들 스스로도 죽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노는 것에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으리라고, 즉 그들 스스로 자신의 추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네들은, "재밌잖아요?" 라는 변명거리를 마련해 둔다. '재미'라는 단어가 주인을 잘못 만나 또 이렇게 고생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 파인먼은 방정식을 이러 저리 비틀며 전개하는 일을 즐겼다. "뭐 하고 있죠?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재밌잖아요?" 파인먼의 중요한 업적들은 그러한 사고상의 놀이의 부산물이다. 리눅스를 처음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에게 어떻게 그런 엄청난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재밌잖아요!" 였다. 즉, 재미라는 말은 자기 생산의 순수한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자기 생산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네들은 자신의 무능, 추함, 부화뇌동, 무책임을 덮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한다. 추함은 동조 집단에 들기 위한 회원료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야구는 비생산적인 인간 활동인 스포츠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에 약간의 현실성이라도 부여하기 위해 유니폼을 갖춰 입고 예를 갖추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면서 수행한다. 특히 야구는 야구공이나 방망이가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불문률을 갖는다. 예컨대, 프로야구에서 주로 적용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큰 점수 차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기고 있는 팀이 응원이라는 명목 하에 지고 있는 팀을 조롱한다? 이는 해당 팀의 야구나 스포츠에 대한 소양이 완전히 부재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 배제고 야구부 학생들은 오타니나 야마모트를 존경하고 동경할 것이며 그들을 롤 모델로 하는 선수들도 꽤 있을 것이다. 아마 배제고 야구부 학생들도 미국의 월드 시리즈 최종전의 그 깔끔한 최고급의 경기를 즐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멋진 최고급의 경기가 가능했을까? 최고의 선수들이 집중하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최고의 경기를 망쳐버리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상대를 흔들고 경직시키기 위해, "밤밤 히로시마!", "미국의 51번째 주!"를 외치면 된다. 최고급과 진흙탕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 최고급에 이르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진흙탕을 만드는 일은 너무 쉽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다: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하지 말자. 진흙탕을 만들고 약자를 조롱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일은 너무 너무 쉬운 일이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레 그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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