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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영화에서 보던 좁은 골목들을 택시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숙소는 4, 5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 건물이었다. 페인트 조각이 덜렁거리는, 그런 매우 낡은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현관문 열쇠는 바지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이 정도가 피렌체에 대한 첫 인상이다. 안내인 아저씨가 근처에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기에 그러려니 하고 가 본 식수대. 약 탄산수였다. 물맛이 좋아 여행 내내 아침 저녁으로 여기서 물을 뽑아 마셨다. 그립다.


(보기엔 이래 보여도 물맛은 최고였다.)


피렌체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도시 구석 구석이 시선을 요구한다. 날씨도 좋고, 특히 두오모 성당 근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두오모 성당 종탑도 올라가고 우피치 박물관도 가고 등등 피렌체에서 해야 할 것들은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로스코 전시회 등은 예약을 해두었지만 포기해야 했다.


(어느 도서관의 야외 테라스. 주로 젊은이들이 노트북과 책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한다. 두오모 성당의 돔이 잘 보이는 곳이고 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이고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웬지 유럽 문명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렌체, 시에나 등의 그 유래가 없고 생생한 환경에서 물빠지고 무미건조한 환경으로 옮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카푸치노의 맛을 새로 들여버렸다. 이탈리아에서 먹던 카푸치노 생각이 나서 이곳 영국의 카페들에서 먹어보았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차라니 내가 만들어 먹는게 낫겠다... 문에 도어벨을 새로 달아야 했다. 와이파이를 잡고 이메일 인증을 하고... 밖에서 누가 벨을 누르면 안에서 그 벨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만인 장치에 현대 기술이 총동원된 이 복잡함이란 도대체 무엇이람! 나는 단순한 일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이 그리워졌다. 바지 주머니 속의 큼직한 열쇠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도나텔로라는 조각가를 발견했다. 두오모 박물관에서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을 보는 순간을 돌이켜 보게 되는 지금 이 시점에도 나는 그때 느낀 충격과 전율과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다. 그런데 나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서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이 소장되어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산 로렌초의 설교단 부조는 그것이 도나텔로의 것인지도 모른 채 쓱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그 설교단 부조를 내 눈으로 다시 직접 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사진으로 먼저 보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피렌체의 그 골목 골목들이 너무도 그립다. 과장하자면 한 집 건너 카페(바)가 있고 식당이 있고 가죽 공방, 가구 공방이 있는 그 골목들이 그립다. 피렌체에 가면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봐야 한다기에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또 한번 먹어야겠다고 맛집이라는 데를 찾아갔다. 개시 전인데도 줄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먹는 데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지 않다. 노동절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맛좋다고 온라인에 소문난 집들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결국 숙소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 여기가 맛집이네 하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다 맛집이다. 다들 좋은 스테이크를 내놓고 맛있는 커피를 내놓는다. 이탈리아의 가게들이 다 맛집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삶의 양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어떤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상)


이탈리아에서 기념품으로 막달라 마리아상의 마그넷, 그리고 13유로짜리 단테상을 사왔다. 나는 <신곡> 중에서 '지옥편'을 읽었을 뿐이고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와 어떤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궂이 궂이 단테상을 사왔다. 그런데 단테의 옷깃이 살짝 깨져 있다. 아마 이탈리아에 다녀오기 전이었다면 이런 작은 결점은 나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문제가 된다. 나는 그걸 어떤 식으로 수선할까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저 작은 단테상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사람 머리 크기의 단테상을 사자.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단테를 읽고 단테를 사랑하도록 해보자. 


이상이 피렌체를 다녀온 후의 휴유증이 되겠다...   


추) 두오모 성당의 파사드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나를 진정으로 감흥시킨 것은 그 앞에 있는 세례당이었다. 세례당 안도 사람으로 북적였고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허투른 논쟁과 고뇌와 악다구니를 다 내려놓고 스스로를 침묵 속에서 쉬게 하도록 이끄는 분위기, 성소의 분위기.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나는 이 성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을 살다 아침이나 저녁에 모퉁이 한 두 군데를 돌면 나타나는 성소, 그 안에서 잠시 서서 묵상하고 다시 나설 수 있는 그런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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