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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피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상대를 함부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린 가자 지구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그럴 군사적, 정치적, 실용적 어떤 이유가 있었나? 이에 대한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윽고 심리학적인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이스라엘은 병리적인 상태가 아닐까?


삶은 하나의 여정이다. 처음에 우리는 완전히 무능한 상태로 세계에 던져진다. 그리고 점차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요약해 말한다면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은 자신을 알고 자신에 친밀해지는 과정과 동등하다. 동일한 논리로 말하면 세계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심각한 불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만족 이상의 불만족을 느낄 수 없다.


이 분노의 극한은 무엇일까? 예컨대 살인일까? 아니다.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넘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흔적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이를 다시 변증법적으로 돌아보자.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우는 것일까? 그것은 곧 나의 존재, 내가 한 행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이스라엘 사회가 스스로의 원죄를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건국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원죄를 사는 방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스스로를 파쇼화하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필연적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가자 지구의 황폐함 앞에서 나는 이스라엘의 존재의 황폐함, 그 병리적 황폐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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