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나 동경으로 헤매던 때가 있었다. 책이든 음반이든 영화든 화제가 되는 것들이면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열정으로 보고 듣고 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이렇게 끝없이 따라잡기에만 골몰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이란 걸 느끼게 됐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비육체적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이는 것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못 태연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대신 일종의 반복하기나 다시 보기같은 걸 하게 됐다. 한번은 스쳐갔거나 미쳐 스쳐가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보는 일들.
그렇게 해본 결과, 의외로 놓친 부분이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같은 책이나 영화를 몇 번씩이나 보는구나 싶었다. 어차피 현대문명의 압도적 물량공세를 당해낼 순 없는 게 유한한 인생이라면, 눈을 뒤로 돌려 과거를 ‘음미’하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좋고 유익한 게 지난 간 것에는 없다는 보장도 없을 테니. 아마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 새로움에 대한 부당한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같고, 그래서 나이 든 자들의 표정이 그토록 편할 수 있는가 보다.
오랜만에 책 한 권 읽었다. 고바우 김성환의 편편상이라고, 그렇게 두껍지 않다. ‘고바우 영감’이라면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한번쯤 누구나 들어봤음직하다. 네 컷 시사만화의 대명사니까. 옛날 만화들 중에서도 이런 시사만화는 요즘 시선에서 보면 큰 임팩트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아 보면 지나간 하루하루 사람들의 관심사나 생활상 등이 읽혀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시사만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시사만화야 말로 민중의 생활 감각을 잘 알아야만 그릴 수 있고 호응도 받을 수 있어 항상 세상만물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촉수를 요구하는 영역일 것이다.
이 책을 구입할 때는 그런 예전 시사만화 모음집이겠거니 했다. 한데 받고 보니 김성환 화백의 글이 주가 되는 책이었다. 물론 글 사이에 만화풍 그림이 하나씩 들어 있기는 했으나... 동양 삼국의 사화(史話)나 역사적 사실에서 취재한 내용들에다 화백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덧붙인 것인데, 그림쟁이가 글을 쓰면 얼마나 쓸까, 하는 얕보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깊은 공부가 깔린 글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내용들이 꽤 거론하고 있는데, 비록 얄따란 책일지라도 틈틈이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동영상 보기에 너도나도 바쁘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책 읽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또 길게 이어지는 두꺼운 책은 더더군다나. 하지만, 이 정도 책은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어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