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되지 않음'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이야기
하루haaru 2022/12/22 19:46
하루haaru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우리의 환대
- 장희원
- 12,600원 (10%↓
700) - 2022-12-07
: 378
<우리의 환대>로 2020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던 장희원 작가의 단편소설집. 그 작품에 남은 기억이 좋아서 기대하며 읽었다. 다른 듯 닮은 아홉 편의 작품들이 촘촘하게 실려있다.
표제작인 <우리의 환대>는 재현과 아내가 아들 영재를 만나러 호주로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공항에서 3년 만에 영재와 만나는 순간부터 영재의 공간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제대로 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것을 전해주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들은 영영 아들을 잃었음을 직감한다.
지지하지 않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묘한 체험이었다. 심정적으로는 영재를 응원했다. 재현과 한국에 자신을 맞출 수 없었던 영재가 그동안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의 담담한 또는 단단한 모습이 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은 재현의 시선을 따라간다. 자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영재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재현. 그리고 그런 재현을 바라보는 나(독자). 이런 기묘한 체험에서 양가적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길었던 건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나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공통적으로 누군가의 죽음 이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은 저마다 달라서 같은 존재를 잃었다고해도 '우리'가 될 수 없다. 그러고보니 책 속에는 표제작의 제목이 '우리(畜舍)의 환대'라고 적혀있다. 화자와 공통점을 공유하는 우리라기보단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지만 하나의 공간(우리)에 존재할 뿐인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읽어도 될까. 모든 시간이 끝나지 않을 시행착오처럼 보이는 이야기에서 '간단하게 우리를 규정짓지 말고 다른 개인으로 존재하되 다른 마음 곁에 있자'는 메시지를 읽었다.
상실한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 그렇다고 상실이 극복되지 않는다. '극복되지 않음'을 손에 쥐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기쁘게 기다리는 환대(歡待)가 아니라 돌아오길 기다리는 환대(還待) 같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고 마지막에 실린 평론도 좋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