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라고 하면 누구나 읽어보고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서유기의 등장인물인 삼장,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어린 시절부터 흔하게 듣던 인물이고, 만화책 및 각종 동화책으로 쉽게
접하다보니 어느샌가 우리는 서유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알고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2,5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라는 것은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나서 알게 되었고, 각 인물이 단순히 평면적인 인물이 아닌 매우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입체적 해석은 난해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삼장의 원래 법명은 현장이며, 속세의 姓은 陳. 삼장이라는 이름은 삼장의 경을 가지러 가기에 (당)태종이 제안한 호이다.
손오공(猻悟空)의 이름은 첫 스승인 수보리조사가 지어준 이름이고, 이후 삼장에 의해 行者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천계의 천봉원수였던
저팔계의 법명은 저오능(猪悟能)으로 관세음보살이 지어주었으며, 그 후 삼장에 의해 팔계(八戒)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한
권렴대장이었던 사오정(沙悟淨)도 관세음보살이 지어준 법명이며 후에 삼장으로부터 화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세 제자가 모두 悟
항렬로, 깨달음(悟)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삼장이 타고가는 백마는 서해용왕의 아들로, 이처럼
서유기는 삼장과 세 제자, 그리고 백마가 경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이다.
긴 모험 속에서
삼장은 언제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책의 머릿말에 언급된 것처럼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프로도가 무거운 책임에 나약해지고 괴로워하듯이) 모든 사람들의 과업을 짊어지기에 어린아이 마냥 나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나약한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 속에서 서천에서 여래를 만나 경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은 단 한번도 무너지지 않는다. 괴물에 잡혀서 울고, 깊은 산을
두려워하고, 큰 소리에 놀라 말에 떨어질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서천으로 가야한다는 의지와 도를 향한 열정은 그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반면 손오공은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인듯 싶다. 天帝의 자리도 능력에 따라
해야한다는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항상 낙천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다. 삼장의 앓는 소리에 經을 읽어보기는
했냐고 오히려 스승을 면박을 주기도 하는 손오공의 모습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서유기의 주인공 답게 언제나 웃음을 준다.
조금만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수시로 짐을 나눠들고 각자 길을 가자는 것은 언제나 저팔계이다. 항상 배고프고, 짐을 들기 싫어하고,
어떻게 하면 손오공을 골려줄까 고심하지만, 오히려 당하는 것은 그다. 필마온이라고 소리치며 손오공을 욕하지만 손오공은 그런 모습을
오히려 즐긴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끝까지 精慾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저팔계지만 사오정과 함께 스승을 지키는 책임을 나눠지지
않았다면 손오공도 삼장을 무사히 서천에 모시고 가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사오정은 어떤 인물인지
알기가 쉽지않다. 대사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요괴와 싸우기 보다 주로 스승을 지키는 쪽이다. 항요장을 휘두르며 대활약을
기대해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톡톡튀는 손오공을 잡아주고, 눌러앉으려는 저팔계를 일으켜주는 역할이
사오정의 역할인데, 다른 무엇이 그 속에 있을지 궁금하다.
서유기를 읽으면서 이전까지 몰랐던
사소한(?) 점이라면, 손오공이 행자라는 이름도 있다는 것, 저팔계의 법명이 오능이라는 것, 사오정의 또다른 이름이 화상이라는
것과, 세 제자 모두 소식(蔬食)을 했다는 것이다. 저팔계가 채식만 했다니! 고기 뜯는 저팔계의 모습이 사실이 아니라니!
끝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서유기 완역판이 나오지만, 절판으로 구하기 힘들어 직접 출판사로부터 사는 노력을 기꺼이했던 이유는 화려한 컬러 삽화 때문이다.
다른 책들과 달리 현암사의 서유기 삽화는 단여코 최고라 할 수 있으며, 최고의 삽화가 서유기의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틈틈히 읽느라 꽤 긴 시간을 읽었지만, 삼장과 세 제자, 백마가 함께 했던 고난의 여행길은 내게는 지난 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끝으로 머릿말에서도 발췌한 손오공의 얘기를 적고 싶다.
"스승님은 여러 나라를 직접 다니지 않으면 고해를 초탈할 수가 없어. 그래서 한 걸음을 옮기는 데도 힘이 드는 거야. 우리는
스승님의 목숨을 지켜 드릴 수는 있어도 그 괴로움을 대신해 드릴 수도 없거니와 경을 가져올 수도 없어. 설령 앞질러 가서 부처님을
뵙는다 해도 부처님은 우리에겐 경을 내주지 않는단 말이야. 고생 없이 손에 넣는 물건은 소중하지 않는 법이거든." (22회.
손오공이 저팔계에게 한 말)
다시 서유기와 함께한다면 그때는 전혀 다른 서유기를 읽게 되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