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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붕어의 철학 :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와 함께 어항...
  • 배세진
  • 27,000원 (10%1,500)
  • 2025-04-19
  • : 4,435

1.석사 갓 입학한 대학원생들 또는 대학원 입학 예정인 학부생에게 추천

인문사회 분야에서 푸코, 데리다, 버틀러가 중요하단 건 누구나 알 것이다. 하물며 관심이 없다고 해도 지나가다가 한번쯤은 세미나에서 이들을 공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끼리 세미나를 꾸려 푸코, 데리다, 버틀러를 공부하면, 정말로 그냥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도리어 핵심을 짚지 못하고 엉뚱하게 오독할 수도 있고 말이다.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이들이 <말과 사물>을 읽고 느낄 그 무력감.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만 알고 <젠더 트러블>을 읽고 난 후의 당혹스러움. 그 책들이 어려웠던 이유는 당신이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포스트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도 알지 못하고 '권력-저항'이 왜 담론 안에서만 (불)가능한지도 모른 채, 버틀러는 수행성뿐이지 하면서 버틀러 철학의 학문적 계보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그냥 무작정 공부를 했다. 그게 얼마나 무용했는지 (물론 어떤 면에서 값진 시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깨닫고 그 당시 이끌어줄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조금은 편하게, 조금은 더 쉽게, 더 생산적이게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이 책을 사도록. 때로는 스승이나 선배가 떠먹여 주는 게 꼭 필요한 법이다. 


이 책은 포스트 구조주의에 대한 배경 지식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왠지 내가 석1로 돌아가서 읽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다. 그래서 지금 석사 갓 입학한 이들이 또는 예비 대학원생들이 (특히 포스트구조주의 프랑스 철학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2. 버틀러는 세미나 파괴범

이란 소리를 정말 (대학원에서) 많이 하는데, 사실 버틀러의 난해한 글쓰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버틀러의 학문적 좌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 채로 원생들끼리 공부해서 그런 게 아닐까. 데리다 알튀세르 푸코를 모르고 버틀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공부하려는 사상가가 누구의 이론에 천착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며, 어떤 철학적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지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센텐스 바이 센텐스로 어떻게든 문장 단위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어려울 수밖에.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게 공부의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숲을 가리키고 철학자들의 사상적 지형을 맵핑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3. 담론이 주체를 생산한다.

포스트 구조주의의 핵심 중 한 가지를 말하자면. 담론이, 이데올로기가, 기표가, 언표가, 지식권력이, 언어가, 규범이 주체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알고 가도 배세진한테 많은 걸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를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이성애 규범이 지배하는 현 이데올로기(규범이든 뭐든) 내에서 이성애를 빼고 우리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난 이미 이성애적 주체인데 (또는 저항하였기에 동성애 주체든 퀴어든 뭐든) 이성애를 빼고 나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할 수 있느냔 말이다. 프랑스 철학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무슨 어떤 본질적이고 대단한,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서, 이성애 따위 없는 무언가 백색의 공간에서, 신이 지배하는 공간이자 유토피아적인 어떤 공간에서, 규범을 떨쳐내고 본질적인 것을 찾을 수 있느냔 말이다. 다시 한번 묻자면 이성애를 제외하고 (사유하지 않고) 주체를 상상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런 것은 없다. 현재의 담론을 넘어서는 어떤 저 너머의 이데아 같은 무언가를 다들 지향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는 것이다. 


권력이 나를 억압하고 있고 그 억압하는 권력에서 빠져 나오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다들 착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권력 자체가 이데올로기 자체가 규범 자체가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 자장 안에서만 활동하고 실천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보자면, 


"권력 밖으로 나가자!!!! 이데올로기 밖으로 나가자!! 으샤으샤!!! 우와와와!!! 밖으로 나왔다 난 성공했다!! 난 이제 진정한 나를 찾았다 왜냐하면 난 규범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네도 밖으로 나와라 여기 엄청 좋다!!!! 우아아!!! 난 이제 아주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다!!!! 우아아!!!"


이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표지이기도 한 금붕어와 어항에 관한 테제이다. 금붕어는 어항 밖을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담론 내에서만 사유하고 살 수 있다. 그 밖으로 대체 어떻게 나갈 수 있는가? 자본주의 밖을 상상할 수 있는가? 돈 이외에 다른 물질을 교환하든 뭘 하든 생산수단이 지금과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없다. 교육에 대해서든 하물며 연애든 섹스든 여행이든 관계든 가족이든 걸음걸이든 젓가락질이든 다 그것을 벗어나서 우리 자신이 어떤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4. 그렇다면 저항이란 무엇인가?

그게 포스트구조주의의 화두이고 뭐 각자마다 다 다르게 말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내가 설명할 순 없고) 그렇다고 해도 좀 어렵다고 제발 그냥 쉽게 합리적 주체를 전제해서 해결하려고 그러지 좀 말고 참. 



5. 결국 핵심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좀 파괴하라는 말 같다. 아 이성애? 너무나 당연한 거지. 자명하지 진리지. 성별은 딱 2개지. 2000년 전부터 여자랑 남자랑 사랑하고 섹스하고 애 낳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잖아. 종족 번식 몰라? 이건 문화도 뭐도 아니고 '과학'이잖아. 그리고 사회가 이걸 잘 따르고 있고.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거다. 100년 전만 해도 성별 자체에 대한 담론이 달랐다는 것이다. 매번 다르게 구성되었다고 푸코가 역사를 빌미로 자꾸만 말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지금의 세상은 우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본질적인 진리가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의 것들이 있고 "예전부터 그랬어." 이렇게 말하지 말고 고정불변의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단순히 수용하지 말고 의심하고 회의하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포스트구조주의다. 



6. 1800년대 조선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 안 난다) 1800년대 조선에 미국인 선교사가 왔다. 서양인을 처음 본 조선의 양반은 이 사람과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서양인이 밥을 먹기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서양인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자 비로소 이 사람이 도깨비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했단다. 왜냐하면 서양인을 처음 봐서 처음에 도깨비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도깨비는 밥을 못 먹으니까 서양인이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기다렸던 거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아 사람이구나 싶어서 안심했다고. 


난 이 이야기를 왜 할까? 이게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의 담론을 잠깐 보여준 느낌이어서? 또 하나를 더 뜬금없이 말하자면 고종이 미국인 외교관의 테니스 연습 경기를 보는 중에 힘들게 뭘 하는 거냐 하인 보고 대신 하라고 말했단다. (걍 생각나서 말해봤다.) 



7. 난이도가 좀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래도 많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지형이 그려질 것 같지만 좀 어려우면 동력이 떨어지는 법. 아래는 배세진과 몇몇 정치철학자들이 함께 운영하는 블로그인데 여기서 이 버틀러에 대한 글이 참 쉽고 좋다. 처음 읽는 이들에게 강추하는 글이다. 이 정도 난이도일까 생각했는데 이것보다는 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래 글을 읽고 배세진 책을 읽는 걸 추천한다. 

https://blog.naver.com/limitedinc/223207515835



8. 실증주의 과학이 판을 치고 세계는 전쟁 중이고 트럼프는 우웩이고 내란범들은 여전한 세상에서 

모두가 공부할 뜻이 있다면, 그리고 그 공부를 활용하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던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떠올라서 지금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하고자 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란다. 공부하고 실천해서 혁명해야 한다. 점점 답 없는 세상에서 포기하지 말고. (갑분혁명)



9. 알튀세르 파트

근데 웃긴 건. 이상하게 알튀세르 파트가 가장 어려웠다. 나에게 알튀세르가 제일 덜 익숙해서일까? 마르크스를 내가 몰라서일까? 버틀러와 푸코는 차라리 편하게 읽었는데 말이다. 내 문제인가. 배세진이 알튀세르에 가장 애정이 커서 조금 더 할애하다가 어려워졌나?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알튀세르 파트 읽다가 아 나 진짜 독해력 낮네 싶었다. 그러다가 푸코 때 다시 안심했다. 이건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읽어서 이유를 알아내고 싶다. 알튀세르 호명 이론은 정말로 매력적이고 이 사람 인생사가 너무 기구해서 흥미로운데. 왜 이렇게 어렵지. 배세진도 내가 지금 한 이 말을 조금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상하게 알튀세르가 제일 어려웠다. 왠지는 모르겠다. 



10. 폰트

푸코까지 읽고 알았다. 장 단위로 폰트(서체)가 다르다. 진짜 특이한 책이다. 편집자의 패기랄까.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뭔가 또 그래, 담론이 그렇게 구성되듯 폰트도 그렇게 구성되는 법 하면서 그냥 넘겼다. 폰트가 다르다라는 건 거기 그대로 있었는데 3부 때 알아서 웃겼다. 거기 그대로 있었는데 읽어내지 못하다니 내가 증상적 독해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포스트구조주의식 농담) 



11. 결론

아무튼 좋았다. 일본은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독자도 많이 생기고 그 독자들이 커서 연구자가 되어 더 많은 대중서 학술서 논문을 내고 그렇게, 어떻게 보면 '무용한' 철학적 사회적 문학적 연구들이 범람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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