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절대적인 가치와 개념들을 해체시켜 상대화 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다. 이는 사상의 영역에서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세계화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내 실생활의 영역에까지 만연한 시대정신이다. 정치·경제·문화·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모든 가치가 ‘다른’ 가치들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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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대성을 지양하고 다원성을 지향하는 시대이지만, 한국인이라면 무의식적으로 한국적 가치관을 절대화시키며 살아왔을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복종, 학연·지연에 의한 사회 진출, 눈치로 대변되는 암묵적 표현 방법 등등 철저히 한국적인 것을 보편적 진리인 양 여기며 살아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이라는 강물 속에서 아무 이질감 없이 한 마리 물고기로 살아왔던 내게, 이 책은 물 밖으로 뛰어 올라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살아온 한국이라는 세계를 철저히 해체시켜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세계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줬던 것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한국인의 정신세계 속에 이름도 없이 뿌리내리고 있던,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졌던 가치들에 이름을 부여한 저자의 통찰력이었다. 저자는 우선 우리 안에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특성(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근본적 문법)을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로 이름짓고, 파생적인 특성(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로 이름짓는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음(陰)의 가치들을 의식적인 양(陽)의 세계로 이끌어냄으로써 당연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 교육계의 한 지도자가 교육철학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보편적 가치관 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잘 알고 대처해야만 교육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의의 핵심은, 예컨대 새로 부임한 교육현장에서 먼저 주변에 있는 선배 교육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회식 후에는 눈치 보지 말고 제일 먼저 계산하고(달리 말해 먼저 눈치 보라는 뜻), 자신의 교육철학에 반하더라도 선임 교육자의 방침에 전적으로 복종하라는 등의 실제적인 노하우에 관한 것들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한국인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더러는 보편적 가치에도 부합하지만, 한국적 편협성을 조금도 뛰어넘지 못하는 교육이 어떻게 보편적 진리를 구현하는 세대를 양육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처럼 비단 한국 교육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역시 주체는 사라지고, 편협성 속의 객체들로 넘치게 되었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자의 대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고쳐나가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 가족과 동창을 비롯한 모든 소속집단에 용해되지 않는 독립적인 '나'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주체는 이기주의나 특정한 집단주의와 결합하지 않고 보편주의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