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날갯짓이 서툰 비둘기
밤눈이 어두운 두더지
일머리 없는 일개미
비린내에 비위가 약한 물살이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꿀벌 등..
이렇게 뭔가 어긋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분명 있을지도 모른다는…
제목만 보고는 열심히 나쁜 짓을 일삼는 악마를 만나리라 기대했지만 나쁜짓에는 영 소질이 없는 귀여운 악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일러를 사랑하니 몸과 마음이 따듯할 수 밖에 없는 악마Z. 가영의 몸을 빌려 가영을 다시 살고 싶게 해주고 종현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할 용기를 주고 사라진 Z가 악마로서는 소질이 없어도 천사의 심장은 없어도 귀엽기만 합니다.
악마 Z는 바이러스를 퍼뜨린 게 어떤 악마일지 상상해 보았다. 나라면 이런 스케일 큰 짓은 못할 거야, 하고 몸을 조금 떨기도 했다. 씨앗은 악마에게 있었겠지만 매개는 인간이었겠지. 어느 멍청이 같은 인간이 악마에게 홀라당 속아 넘어가 이토록 어마 무시한 짓을 벌였는가궁금하기도 했다.
인간 몸의 70퍼센트가 물인 거 아시죠? 엄청 단순한 존재같은데 사는 일은 너무너무 복잡해요. 재능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고 성공도 해야 하고 시기 질투 비방도 해야 하고, 친구랑 싸우기도 해야 하고 울기도 해야 하고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설득도 해야 하고, 단순한 주제에 너무 복잡하게 뭘 해야 하잖아요. 그게 도저히 납득이안 돼요. 귀찮아요.
요즘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영혼을 죽이는 일이 유행이었다. 예전엔 말 그대로 총과 칼로, 몸싸움으로 주먹다짐으로 상처를 입히고 목숨과 재산을 빼앗았는데, 이젠 훨씬 정교하고 교묘해졌다. 사람들은뭘로 사람을 쳤는지 모르게 사람을 쳤고 뭘 빼앗긴 줄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겼다. 그러다가 죽어갔다. 얼핏 자연사, 병사인 것처럼 보여도 악마의 실적으로 적혔다.
저렇게 살면 어떨까? 악행에 아무런 관심이 없이 누군가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뒤집어놓고 박박 긁고 조이게 하지 않고, 비실비실 웃고 조롱하거나아닌 척하며 한 방 먹이고 정신 나간 듯 빈정거리거나 정의롭고 객관적인 척하며 누군가의 멘탈을 뒤흔들지 않고 그저 이렇게 보일러의 온기가 흐르는 곳에서 조용히 내가 좋아하는것에 집중하며 살면? 악마 Z는 흔들렸다.
일을 많이 벌이면, 불행을 퍼뜨리면 퍼뜨릴수록 사람들 틈바구니에 아귀다툼이나 마녀사냥을 일으키면 그 소음이 극에 달할 때, 그 불행의 폭죽 속에서 새끼 악마가 태어나.
전체적으로는 엉망인데 순간순간 박장대소할 뿐인 것이 인간의 삶이로구나, 악마 Z는 생각했다. 일하러 가서도 전단지를건네며, 요구르트를 건네며 그 꿈을 종종 떠올렸다. 하루하루는 이렇게 재미없는데 그 하루 중에서 30초 정도 웃는 게 인간인가. 30초의 웃음으로 굴러가는 삶.
그러나 악마 Z가 지독하고 어둡고 음울한 이야기를 모조리 좋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악마 Z가 『바다와 독약』을읽을 때 생체 실험 장면을 펼쳐 가영의 코앞까지 들이대고는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야 이놈들 좀 봐, 진짜 독한 놈들이라니까, 인간은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았던 걸까, 정말 독하고………… 독해..... 이놈들은 보통 아니야 진짜... 비위도 야망도 저세상급이야.... 하고 넌더리를 내어서 가영이 오히려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Z 씨도 그런 건 싫군요?
아와 밤에누운 자리에서 소리 없이 항변했다. 유명한 게 뭐 그렇게 좋은가요. 자기 의지랑은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이끌려운 좋으면 꼭대기로 올려놓아지고 운이 나쁘면 한순간에 진창으로 처박히게 되는 것이. 그 통제 불가능한 것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언제나 스몰 사이즈 정도여야 좋았다. 가늠이 가능할 때, 몸에 맞을 때, 자신은 스몰 사이즈 인간이었으므로 딱 맞았다. 그렇게, 더 큰 사이즈의 행복 같은 건 바란 적도 없는데. 그러나불행은 사이즈에 맞게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