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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콩
  • 비행운
  • 김애란
  • 13,500원 (10%750)
  • 2012-07-18
  • : 22,096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단편으로 두어 편 읽은 게 다인지라 <비행운>이 제대로 읽는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 말해도 될 듯하다.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에 선명한 비행운을 보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비행기에 타고 있는 이들이 부러워진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된 8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속 등장인물들은 푸른 하늘의 비행운(飛行雲)이 아닌 행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행운(非幸運)의 연속인 인물들이다.
실직자인 여자는 대학 시절 마음에 둔 선배에게 무례한 부탁을 받고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한밤중 반지를 찾아 나선 임신부는 산통을 겪는다.

오랜 장마로 물바다가 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골리앗크레인에 의지하고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한 남자는 아내를 병으로 잃는다.
추석에도 쉬지 못하고 인천공항 화장실을 청소하는 비정규직 기옥 씨의 삶도 녹녹지 않다.
여자가 오랜 친구와 떠난 첫 해외여행은 생각처럼 즐겁지 않고 다단계로 지인들을 끌어모아 다른 이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주인공도 등장한다.

작가가 모아놓은 주인공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부모를 모두 잃고 골리앗처럼 서 있던 크레인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소년도 큐티클을 정성스럽게 다듬던 여자도 죽어서도 여전히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환영을 봤던 여자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엄마, 사식 좀‘이라는 짧은 편지를 받았던 여자도 나이만 들고 여전히 비슷한 자리를 맴돌고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지금은 소설 속에서는 큰맘 먹고 할 수 있었던 네일과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청소원이 존재하고 재개발이라는 핑계로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합숙하던 젊은이들은 나이가 들었고 그 시절 아이였던 젊은이들은 성공을 위해 떠난 캄보디아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었다.

여전히 세상은 비행운(非幸運)인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언제나 비행운을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로만 인식하는 날이 올 지 까마득해진다.
어둡기만 했던 세상을 보던 작가의 눈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근래에 나온 소설집도 읽어보고 싶다.

*비행운(非幸運)은 우찬제 문학 평론가의 해설 편에서 가져온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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