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코 입이 조금씩 튀어나온 게 밉지 않고 귀엽구나, 머리는 꼭 흑인 댄서 같구나, 미용실에서 파마 안 해도 되겠다야. 그러나 열아홉살의 여름이 지나자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스물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동호라는 소년은 자신의 집에서 세들어 살고있던 친구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것을 본 것 같으나 확실하지 않다. 처음엔 광주 시민들에게 시신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던 그는, 청년들이 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하자 자신도 그 무리에 남았다. 결국 그는 죽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죽은 사람들은 원혼이 되어 자신의 시신이 다른 시신들과 뒤엉킨 채 썩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고름과 각종 체액으로 뒤섞인 저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마지막에 살아남은 동호 어머니는 동호에게 따뜻하고 꽃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동호와 몇 마디 말도 나누었던 선주라는 캐릭터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수치스런 일을 겪고 나서, 살아남기 위해 추운 곳으로 가야 했다고. 반대로 해석하자면, 따뜻하고 꽃이 핀 곳은 광주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정의라던가 의리를 지키는 그런 행위를 해야 하는 장소라고 본다. 동호 어머니는 안중근을 격려하는 어머니처럼 그의 영혼을 칭찬하고 보다듬은 것이다.
5.18 항쟁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로서 다 읽은 셈이다. 다음엔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 등에 대해 집중해서 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