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마이 양아치들의 우정
감각의 박물학 2009/02/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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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처음이다.
문체는 책날개에 적혀있듯 '날아갈 듯 가볍고 유쾌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만화 한권을 뚝닥 해치우듯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거품 경제가 꺼진 일본의 넘버쓰리들이 전혀 음울하지 않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들에겐 혁명의 열정도, 면학의 의지도 없다.
절망이랍시고 약(drug)에 빠지고, 쾌락 속에 허우적거리지도 않는다.
이 음울한 군상들은 좀비스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단체로 짝짓기를 감행하려 여학교에 난입한다.
주먹질과 발차기는 기본이다.
왜,라고 묻는다면 "재밌잖아"라고 대답할 게 뻔하다.
"달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멍하니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 나를 잡아당기라구. 달의 인력을 빌어 간신히 일어났다. 몇 가지 할 일이 있어서였다. 쓰러지는 건 그 다음 일이다."
이런 문체는 마음에 든다.
여학교 옥상 난입에 성공한 '나'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친구 히로시가 있는 병원 쪽을 확인하고 폭죽을 쏘아올린다.
거짓말처럼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
파란 불똥이 어둠을 찢었다. 다음은 빨강, 다음은 초록, 다음은 오렌지, 다음은 노랑.... 나는 폭죽의 굵직한 동체에서 전해지는 기분 좋은 충격을 느끼면서, 여자 몸에 사정하는 게 이런 느낌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병원 옥상에서 본, 히로시의 거의 신품이나 다름없는 고추를 떠올렸다.
히로시 보고 있냐?
우리 해냈어.
네가 죽는다고? 어림없지.
너 보고 있지?
죽음을 앞둔 친구에게 기껏 해줄 수 있는 것이 여학교 난입이다.
거창한 대의명분도 없고, 근사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도 없는 싼마이들이 보여주는 이런 우정이 눈물겹다.
삶이란 그런 불꽃이다.
양아치 새끼라도 좋으니
누군가가 내 죽음을 향해서도 폭죽을 쏘아올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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