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설원 위에 새겨진 실존의 발자국
율리시즈 2026/04/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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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의 길
- 박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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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 2026-03-01
: 1,045
[텍스트의 설원 위에 새겨진 실존의 발자국]
- 박흥식 감독의 각본집 <범의 길>을 읽고.
영화 각본집은 종종 영화라는 최종작품을 위한 스케치 정도거나 미완의 설계도로 취급받곤 합니다. 아마 적지 않은 각본들이 그럴 겁니다. 그러나 박흥식 감독의 <범의 길: 1920 독립전쟁>은 스크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인문학적 텍스트로의 풍모를 지닌 뛰어난 각본집입니다. 이 각본집을 정독하다보면 인문주의자로서의 박 감독의 시선을 넘어 절제와 선택, 묘사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가 행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1920년대를 전후해서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공간을 무대로 한 이 각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같은 스펙타클의 묘사를 지나 그 승리를 지탱했던 개별적 실존들의 내면까지 공감하게 되는 드라마를 선사합니다. 연극엔 희곡이 있고 영화엔 각본이 있죠. 세익스피어가 희곡을 위대한 문학 장르로 보여주었듯이 뛰어난 각본은 대사는 물론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독자의 상상력에 부여함으로써 자칫 수동적인 영화 감상에 머무르는 함정을 뛰어 넘습니다. 이는 한국영화계에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생충>, <헤어질 결심> 같은 훌륭한 각본집이 먼저 선보이기도 했으나 <범의 길>은 영화 제작 이전에 공개됨으로써 문학 장르의 하나로 간주해도 될 만큼의 선구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이 각본집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부끄러움'입니다. "내가 끝없이 싸운 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다"라는 멘트를 던지는 홍범도 장군의 선언적 문장은 항일 투쟁의 대단한 명분과는 자칫 안 어울려 보입니다. 각본에도 언급되듯이 전쟁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매국노에 의해 나라가 빼앗긴 수모 속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마음은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려는 최후의 보루인지도 모릅니다. 각본 속 지문들은 만주의 혹독한 추위를 건조하면서도 서늘하게 묘사하는 것을 배경으로, 홍범도를 비롯한 인물들이 겪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결함을 대비시킵니다. 여기에서 '범의 길'은 맹수의 포효라기 보다는 부끄러움을 넘어서기 위해 고독하게 설원을 전진하는 걸음에 가깝습니다. 각본집의 표지 이미지처럼 말이지요.
영화애호가의 관점에서 볼때 이 각본집의 미학적 성취는 흥미롭게도 절제에 있습니다. 박흥식 감독은 인물들의 대사를 절제하는 대신 지문을 통해 공간의 긴장감을 키웁니다.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며 머릿 속으로 시공간의 미장센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상상력의 파고는 실제 영상이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넘어설 지도 모릅니다. 능동적 독서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죠.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작가의 픽션에 숨결을 불어넣어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자칫 박제될 뻔한 수많은 영웅들을 우리 곁으로, '인간'으로 불러낸 점은 이 각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일 겁니다.
인간 홍범도라는 드라마와 전사 홍범도라는 스펙타클을 동시에 그려낸 이 각본이 머지 않은 시기에 영화로 다시 태어나길 고대합니다. 이 각본은 매 에피소드가 매우 충실하게 짜여져 있어 영상 구현에 빠지는 것들이 있다면 아쉬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러닝타임이 긴 영화거나 아예 매회 긴장이 응축된 드라마 시리즈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박흥식 감독이 <탄생> 영화를 <청년 김대건>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도 좋은 사전 사례일 겁니다. 계곡에서 홍범도가 퉁소를 불고 친구 박종달이 소리를 하는 장면은 우리의 선배들이, 우리의 풍류가 얼마나 깊고 긴 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에 영화가 아니면 드라마에서라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드라마와 스펙타클의 조화로 탄생한 수작이지요. 물론 <범의 길>이 영상화된다면 각본의 완성도와 비슷할 거라고 보장할 길은 없습니다. 이는 기술적으로 내용적으로 훨씬 어려운 과제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전개가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구슬들을 잘 이어간다면 큰 하락은 없을 겁니다. 제가 각본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극장에서 모든 인물들이 모여 해후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명작인 <트리 오브 라이프>의 후반 장면에 비견될 만큼 가슴뭉클한 장면이지요. 박흥식 감독이 영화의 완성도 이전에 각본의 완성도를 위해 과거 자료와 현재까지 나타난 여러 시청각적 자료를 얼마나 노력하고 학습했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입니다.
서구 영화들은 2차대전의 영웅을 비롯한 수많은 시선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전쟁사는 서구의 규모와 양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그 질에 있어서는 좋으면 좋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번듯이 볼만한 영화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나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 문승훈 감독의 다큐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 등 몇 개를 제외하곤 너무너무 부족합니다. 다양한 작가적 시선과 주제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비롯한 여러 빛나는 기록과 아울러 그늘까지 비춰주는, 더 높은 완성도의, 더 많은 작품들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립전쟁을 비롯한 근현대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블루 오션입니다.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는 종종 카리스마나 의무감, 역사에 크게 기댐으로써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또한 도덕적 정의감이나 역사심판론 등에 의해 내러티브가 좌우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자체와 인물에 투영되지 못하고 다큐나 교훈같은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범의 길>도 이 우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 권력과 재력이 일제의 통제에 있던 와중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숭고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감히 반기를 들기 힘든 장치의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의 길>은 전사 이전에 인간, 담대한 용기 이전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늘 같이 품고 갔던 한 인간을 조명했기에 대중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내적 장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덕적 정의감의 수월성과 흔한 영웅 서사의 관습을 일단 내려놓고 최소한의 인간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던 인간의 초상을 그려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표현주의 계열이 아닌 리얼리즘 계열에서는 늘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역사는 매우, 자주, 승자의 기록이지만, 이 각본은 패배할 줄 알면서도 인간 존엄을 지닌 채 전진했던 엄혹한 실존들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범의 길>은 1920년대의 과거를 통해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다시 묻습니다. 이는 E.H. 카가 언급했던 '역사는 과거와 현대와의 끝없는 대화'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부끄러워 하며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지구 저편에는 전쟁과 소요가 다발적으로 일어남에도 대한민국은 어떻게 이런 평안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선배 영혼들의 족적을 이해하고 대접하고 계승하고 있는가. 흥미롭지만 송구하게도 너무너무 늦게서야 우리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에 안장했습니다. 그런데 홍 장군의 대접은 부끄럽게도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의견분리의 불씨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런 불씨가 이 각본으로, 그리고 영화의 구현으로 완전히 꺼지길 바랍니다.
<범의 길>은 망각에 저항하고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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