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을 읽게 된 이유는, 왜 사람들은 복종이 주는 편안함을 자유보다 더 큰 가치로 여기는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 물음이 그대로 담긴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조금씩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저항에는 비용과 시간이 들고, 무엇보다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써 모른 척하는 사이 자유는 권력자들에게 조금씩 잠식된다. 권력 주변의 특권층은 이러한 무관심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더욱 공고히 하고, 민중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는 일조차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학습된 패배감에 더욱 젖어 간다. 저자는 굴레를 쓴 소도 신음하고 새장에 갇힌 새도 탄식한다고 말하며, 유독 인간만이 스스로 복종하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으려면, 먼저 스스로가 무엇에 복종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폭군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민중의 무관심 때문이며, 폭군을 만드는 것도 없애는 것도 결국 민중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엘리트의 방관과 위선을 꼬집는다.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과는 정반대로, 저자의 표현처럼 권력의 시녀가 되어 권력에 기생하며 부패한 채 그 권력을 지키는 방패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6세기의 폭군은 한 사람의 얼굴을 가진 존재였지만, 오늘날 폭정의 형태는 이와 다르다. 관습과 제도, 그리고 대물림된 계층구조나 여론을 빚어내는 자본구조 속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이미 여기에 익숙해져서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좀처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복종을 거부하기에 앞서, 무엇이 복종인지 스스로 인식하고 현재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먼저 요구된다. 하지만 그 인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저자는 개인의 결단만으로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결단에 앞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반복적으로 확산시키는 주제와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실은 이미 주어진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습과 제도, 자본이 만들어낸 틀을 알아채려면 사유하는 힘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말한 거부의 결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해지는 토대가 된다.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그 형태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고, 알아보고, 지켜내려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제 발로 새장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