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에 씀
결핍의 고리
코스피 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글은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코스피 지수로 글을 시작한 건 『가짜 결핍』(마이클 이스터 지음)이라는 책이 말해주는 결핍의 고리를 설명하는 데 주식이 좋은 예시가 될 거 같아서이다.
결핍의 고리라는 건 아무리 횟수를 더해도 부족하다는 듯, 우리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계속 반복하도록 유인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반복된 행동이 장기적인 효용을 낳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기에, 결핍의 고리는 단기적인 쾌락은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과 행복, 성숙 등의 바람직한 가치들을 훼손하는, 끝없는 욕망의 구조 또는 중독을 의미한다. 결핍의 고리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을 주식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기회의 발견 : 증권사 앱을 깔고 계좌를 개설한 후 돈을 이체해 놓으면 거래시간 동안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
② 예측 불가능한 보상 : 주식을 보유하면 손실을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10%의 수익을 올릴 수도, 100%, 1,000%의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는 수익률까지 상승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사자마자 상한가를 찍을 수도 있다.
③ 즉각적 반복 가능성 : 주식을 사고 팔 기회(돈)만 있다면, 거래시간 동안 사고파는 데에는 횟수나 기다림과 같은 다른 제한이 없다. 음식은 배가 부르면 더 못 먹고, 로또는 토요일이 지나야 하지만, 주식 거래는 즉각적으로 반복 가능하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 끝이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닫힌 원이 그려지는데, 이 원의 고리 위에 서 있는 대개의 사람들은 스스로는 멈출 수 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이 고리의 핵심은 만족이 아니라 ‘종료 신호의 부재’에 있다. 보상이 확정적이면 멈출 수도 있지만, 보상이 불확실하고 즉각적으로 다시 시도할 수 있을 때 행동은 끝을 잃는다. 기회와 보상, 반복 가능성 중 어느 하나라도 사라지거나 반복이 현저하게 지연되어야만 고리가 끊어지고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결핍의 고리 위를 달리는 이들에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주는 건 도파민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기대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도파민은 단순한 쾌락 물질이 아니라 ‘기대’와 ‘추구’를 강화하는 신호에 가깝다. 보상이 예상보다 크거나, 혹은 곧 나타날 것처럼 느껴질 때 도파민은 행동을 멈추기보다 다시 시도하도록 유도한다.
결핍의 설계자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반복할수록 돈을 벌어드는 산업에서는 결핍의 고리 3요소를 잘 활용한다면 더 큰 수익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실제 증권사들은 기술발전을 활용하여 이러한 방향으로 증권거래를 발전시켜왔다.
과거와 달리 증권거래소를 찾아 가지 않아도, 전화를 걸지 않아도, PC 앞이 아니더라도, 모바일 터치 몇 번만으로 증권을 거래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는 소수 트레이더만 접근 가능했던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거래도 누구나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현물거래로는 달성할 수 없는 막대한 수익 달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돈이 부족한 이들을 위한 신용 공여 기법도 갖가지이다. 기회는 더 쉽게, 변동성(보상 혹은 손실)은 더 크게, 반복은 더 즉각적으로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설계해왔다.
이러한 증권거래 혁신은 특히 단기 변동성을 좇는 거래 방식에서 도박과 유사한 중독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독을 나약한 의지 때문으로만 여기는 건 결핍의 고리를 설계한 이들의 치밀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사실 책에는 주식중독의 사례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도박, 마약, 득점(게임과 같은 계량화된 목표에 대한 집착), SNS, 음식, 소유, 정보에 대한 중독과 욕망을 분석하며, 이들에게서 결핍의 고리라는 공통의 구조를 찾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의 과정을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화들을 섞어가며 쉬운 문체로 그려준다.
느린 진화, 빠른 환경변화
책에서 가장 신선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먼저는 결핍의 고리가 인류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수렵과 채집만으로 생존을 영위하는 우리의 머나먼 조상들을 상상해보자. 먹을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끈기 있게 이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곧 손에 넣을지 모르는 식량에 대한 기대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겼을 것이다. 또한 기대했던 식량이 없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다른 숲과 언덕을 다시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로 전할 확률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이처럼 결핍의 환경에서 보상이 불확실하더라도 기회를 발견하면 행동하고, 실패해도 다시 행동하는 개체들이 기나긴 시간 살아남고 번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이 세대를 거치며 인류의 일반적인 심리구조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과거 인류의 삶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는 이상 하나의 가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보상 체계가 희소한 환경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은 다양한 진화심리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설명이다.
그런데 인류가 기나긴 시간 동안 생존하고 번성해오는데 유리하게 작용해온 결핍의 고리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반대로 풍요로운 현대 사회에서는 중독과 자기 파괴의 원인으로 변모한다. 결핍의 환경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까지 끈기 있게 행동하도록 촉진시켜주었던 심리구조가 풍요의 환경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먹어 치우고 축적하여도 멈추지 않는 욕망의 전차가 되었다.
인간의 뇌와 심리구조가 수십만 년에 이르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의 진화의 산물이라면, 현대 사회가 이룩한 풍요로움은 2, 3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만의 현상이다. 따라서 결핍에서 풍요로 달라진 환경 변화에 뇌가 적응하고 변할 자연적인 시간이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부조화가 현대 인류가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겪는 정신적 결핍의 이유인 것이다.
무한한 욕망에 대해 달리 생각하기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욕망의 무한성에 대해 달리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우리 문화는 흔히 욕망은 무한하다고 손쉽게 가정한다. 경제학은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유한하다는 비극을 최대한 경감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고 스스로 정의한다. 즉 욕망의 무한성은 분석의 대상이 아닌 자명한 전제 또는 법칙처럼 다루어진다. 따라서 저마다의 욕망을 끝없이 좇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로 인한 서로 간의 경쟁, 제한 없는 축적, 벌어지는 격차 같은 것들은 다소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없앨 수는 없는 자연법칙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욕망의 무한성은 그 자체로 고유한 속성이라기보다, 인류가 생존과 진화의 과정에서 구축한 심리구조(뇌신경)와 특정한 외부 환경(결핍의 고리 3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행동패턴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여기서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기대되면 도파민을 뿜어내는 뇌는 신의 계시나 인간의 숙명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진화심리학적 이해는 욕망을 객관화하고, 삶을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독과 고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핍의 고리를 이루는 기회의 발견, 예측 불가능한 보상, 즉각적 반복 가능성을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무언가를 하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거나, 다시 실행하는데 상당한 지연 시간을 둔다든지 해서 말이다. 혹은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하도록 결핍의 고리를 활용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행동을 하면 예측할 수 없는 보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풍요의 고리를 설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의 자기 통제만으로 완전한 해결에 이를 수 없다. 우리는 어떤 환경이 욕망을 끝없이 증폭시키는지를 묻고, 그 반대로 종료 신호를 회복시키는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멈출 수 없도록 조직된 환경에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