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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제29회 - 태종은 여흥삼아 필마弼馬의 관직을 내리고 심원은 고통 속에서 제천의 이름을 부르짖다


p.289

“전하, 아니 폐하, 이제 앞으로 즉위식을 거행할 일만 남았군요.”

“하핫, 아직 폐하는 이르니라.”


   중국 송나라의 고승(高丞)이 편찬한 『사물기원(事物紀原)』에 따르면 천자에게는 폐하(陛下), 임금에게는 전하(殿下), 장군에게는 휘하(麾下), 높은 벼슬아치에게는 각하(閣下)라는 존칭을 쓴다고 했다. 천자가 집무하는 용상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폐(陛)’라 하는데 그 돌계단 아래인 뜻인 폐하는 천자, 곧 황제에게만 쓰는 존칭이다. 이는 존대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이나 발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에서 존칭이 된 것이라 한다. 그보다 한 등 낮은 호칭이 전하인데 진한(秦漢)이래 왕비, 세자 그리고 제왕들의 존칭이다. 『요원전』에서 아직 왕인 이세민은 ‘폐하’라는 말을 사양하지만, 이후로 그의 신하들은 계속 이세민을 ‘폐하’라 부르고 이세민 또한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형과 아우를 죽이면서까지 원했던 자리였는데 더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p. 294

“관직은... 그래... 필마온弼馬溫이라 함은 어떨까. 재미있잖나.”


   필마온에 대한 설명은 p.293~p.294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조금 더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 민담에 원숭이가 말의 역병을 물리친다 하여 ‘피마온(避馬瘟)’이란 용어가 있는데, 여기서 벼슬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필(弼)’과 ‘피(避)’, ‘온(溫)’과 ‘온(瘟)’이 모두 중국어의 같은 발음 ‘비bi’와 ‘웬wen’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바꾸어 쓴 것이다.” (임홍빈 역 『서유기』제1권 제4회 주2에서 인용)

   『요원전』에서 손오공은 무지기(無支祁)로부터 ‘제천대성(齊天大聖)’의 칭호를 물려받은 후에 당태종으로부터 ‘필마온’이란 직함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서유기』에서는 그 반대다. 손오공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용궁과 유명계에서 분탕질을 치자,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손오공을 하늘로 불러들여 천마(天馬)를 돌보는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벼슬을 준다. 후에 필마온이라는 품계가 하찮은 것을 알자 성을 내고 근무지를 무단이탈, 다시 화과산으로 돌아온다. 그 때 마침 찾아온 독각귀왕(獨角鬼王)이 “대왕처럼 놀라운 신통력을 지닌 분을 한낱 비천한 말먹이꾼에 임명하다니, ‘제천대성’이 되신다 한들 어떤 작자가 안 된다고 막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천대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훗날 태백금성(太白金星)의 중재로 옥황상제에게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을 정식으로 받지만, 그것은 손오공을 천궁에 잡아두기 위해 만든, 허울뿐인 유관무록(有官無祿)의 벼슬일 뿐이었다.

   『요원전』과 『서유기』의 공통점이라면, 이 ‘필마온’이라는 직책은 손오공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p.297

“원망은 마십시오, 숙부님. 저도 여유가 없는 데다 또 놈들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으시면 곤란하니...”


p.317

“어마마마! 어째서 이런 놈과...! 어마마마께는 이 나타가 있지 않사옵니까!”


   홍해아는 자신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두건덕(竇建德)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이세민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의 복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자신의 작은 아버지(叔父)를 죽이고 나타의 아버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능욕한다. 게다가 지용부인은 홍해아에게 스스로를 ‘엄마’라 부르게 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가 쏟아져 내린다.



p.303

“그 청원서라면 내 반려했을 것이야! 서쪽 옥문관玉門關 너머로는 일절 통행이 금지되어 있음을 모르느냐!”


p.311

“으음... 어차피 당도 아직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안의 질서가 완전히 바로 서지 않았네. 하주夏州에서는 양사도梁師都가 아직도 반기를 들고 있고...”


   당 건국 초기에는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가 백성들의 이동을 아예 차단했다. 국경을 통과할 때 필요한 통행증 ‘과소(過所)’의 발급을 금지한 것은 물론이고 국경커녕 옆의 지역조차 이동을 금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627년에 천축행을 결심한 국경 근처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이상기후로 인해 식량난이 생겨 수도에 밀집한 인구를 흩어지도록 자유 통행을 허가하는 칙명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난은 『요원전』에서 또한 기막히게 다룬다.



p. 310

“지난번에는 웬 요물 원숭이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귀신이 떠돈다니...”

“세상에 그런 일이...”

“순시 중이던 군사나 환관 중에서도 본 자들이 있다지. 월화문에서 액정궁쪽으로 유유히 활보하는 걸 봤다던가...”


p.313

“이세민! 이세민- 제위를 내놓아라-”


   『삼교수신대전(三敎搜神大全)』에 “전설에 따르면 당태종이 병이 났을 때, 침문 밖에서 귀신이 이름을 부르고 침문 밖에서 벽과 기와를 던지며 희롱했다(按傳,唐太宗不豫。寢門外拋磚弄瓦、鬼魅呼號)”는 기록이 있다. 『요원전』에서는 이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서유기』의 나타태자와 당태종의 저승구경 에피소드를 한데 묶어버렸다. 이쯤 되면 모로호시 선생이 허구와 역사를 엮어나가는 모습은 절묘함을 넘어서 신묘함에 가깝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삼교수신대전』을 조금 더 인용하자면, “겁이 난 태종은 진숙보(秦叔寶)와 호경덕(胡敬德) 두 장수를 불러 자신이 자고 있는 방문을 지키게 했는데 그렇게 했더니 별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장군이 후에 세가(世家)의 문신(門神)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요원전』에서 다루고 있다.



p.311

“법현 법사께서도 열여섯이 넘어서야 천축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셨다지 않나. 너무 조급히 굴지 말게...”


   열여섯 → 예순


   법현(法顯)은 동진(東晋) 시대의 승려로, 당시 중국에 불전이 완비되어 있지 않은 것을 한탄해 399년 60여 세 노령의 몸으로 인도로 떠난 승려이다. 412년에 귀국했으며 『마하승지율(摩訶僧祗律)』, 『대반니항경(大般泥恒經)』 등 6부 63권에 이르는 계율을 한역한 후, 형주 신사(辛寺)에서 사망했다. 우리에게는 『불국기(佛國記:高僧法顯傳)』로 알려져 있다.



p.313

“위지 장군, 나왔나이다! 오늘 밤은 남쪽 담장입니다!”


   위지 → 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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