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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 조동범
  • 9,000원 (10%500)
  • 2021-04-26
  • : 65
조동범 시인의 시집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에서 화자들은 죽어가거나, 이미 죽었거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모든 죽음이 그렇겠지만 그들의 최후는 지극히 외롭고 고독하며 유폐되어 있다. 그들은 먼 우주 공간에 홀로 놓인 우주비행사(<휴스턴>)이며 서늘한 시체공시소에 누운 신원 미상의 시신(<제인 도>)이다. 혹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꼬리를 뒤튼 채, 암석 속에 굳어버린, 오래 전에 사라진 생물(<종의 애도>)이기도 하다.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 떠올리는 편린은 "투명하게 담긴 올리브와 햇살이 쏟아지던 체크무늬 커튼"(<휴스턴>)이거나 "냉장고에 두고 온 두부조림"(<입동>)처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러다가도 그들은 문득 "기쁨과 슬픔, 원망과 분노의 문양들을 호명"하는 일들의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현생의 모든 선과 악"이란 살아있는 자들의 도덕이자 당위이며 망자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죽어갈 때, 그들이 속한 세계 역시 막을 내려 "모든 애도의 방식은 사라지고"(<종의 애도>), "오래 전의 황폐한 서사는 믿을 수 없는 폐허"가 된다. 죽음이란 거대한 허무는 살아있을 때 천착하던 모든 의미를 쓰나미처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앞에 주어진 무채색 세계가 완전한 공허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조동범 시의 세계에서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순환한다. 시작과 종말이 있는 시간은 종말을 목표로 진행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존재는 파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조동범의 시 세계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다. 이는 수평선, 해안선, 국경선과 같은 시어들을 통해 표상된다.
선線들은 날카로운 끄트머리이자 경계이다. 그러나 시인의 세계에서 선이란 뫼비우스 띠지의 접합선처럼 회귀가 시작되는 지점이며 새로운 융합과 생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들은 국경선처럼 때로는 인위적이고 선언적인 경계여서 화자는 그 앞에서 "국가와 민족과 역사의 부질없음을 문득 중얼거"(<John Doe>)린다.
우리가 인식의 한계 때문에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없을 때에도 거기서는 첨예한 대립과 소멸, 생성이 일어난다. 일몰과 일출, 삶과 죽음, 종의 출현과 멸망...
시인은 촘촘한 언어의 그물로 무한한 선의 순환 속에서 스러져가는 존재들을 건져낸다. 그들은 "침몰한 전함이나 보물선,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과 전설"(<호라이즌>)이며 "국경 인근의 저수지에서 발견된 익사체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영웅담이 아"닌 이야기이다. 누군가 찢어버린 성경의 외전처럼 떠도는 잊혀질 이야기들은 시인의 펜끝을 통해 잠시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우리 없이 무심한 미래는 우리가 딛고 선 지금에 맞닿아 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지극한 허무를 마주하고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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